베이징 공연을 불과 세시간 앞두고 행사를 전격 취소한 뒤 평양으로 돌아간 북한 모란봉악단 사태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그토록 애지중지한다는 모란봉악단이 중국 지도부를 대거 초청해놓은 상태에서 막판에 공연을 무산시킨 것은 단순한 문화행사의 파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2012년 김 위원장의 직접 지시로 결성된 모란봉악단의 첫 해외공연인데다 그 동안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북한이 당 차원에서 추진한 정치행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12일부터 사흘간 예정됐던 모란봉악단 공연은 북한에서는 최휘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추진했고, 중국에서는 당 외교를 담당하는 공산당 대외연락부가 나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전통의 우의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북한 매체도 악단의 첫 해외공연을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한 데서 양국이 이번 공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란봉악단이 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선택을 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북한은 물론,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들도 사태 배경에 대해 함구로 일관해 온갖 억측만 증폭되고 있다. 지난 10일 김 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에 심기가 불편해진 중국 당국이 관람 인사의 격을 대폭 낮췄고, 이에 불만을 품은 김 위원장이 악단 철수를 지시했다는 게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 북한의 핵실험을 반대해온 중국이 김 위원장의 수소폭탄 발언을 아무 일 없는 듯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당국이 공연 곳곳에 나오는 미사일발사 장면 등을 문제 삼았다는 말도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공연 형식, 내용, 관람 등과 관련한 업무 관련 소통문제로 공연이 취소했다고 한 보도가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한편에서는 김 위원장의 옛 애인으로 알려진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에 대한 중국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김 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든가, 일부 단원들이 공연 전 망명을 시도했다든가 하는 설도 나돌고 있다.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로 북중의 관계복원 노력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렇잖아도 정상국가로의 관계변화를 꾀하는 중국이 김정은 정권의 무모하고 예측불가능한 속성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양국 긴장관계가 당분간 해소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중관계 악화는 한반도 정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는 악재다. 남북 당국회담 결렬에 이은 모란봉악단 파문이 새로운 북한발 위기가 되지 않도록 당국의 상황관리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