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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마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 “책임 있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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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마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 “책임 있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

입력
2015.12.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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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토메우 마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열 논란에 대한 입장과 앞으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바르토메우 마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열 논란에 대한 입장과 앞으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바르토메우 마리(49)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4일 3년 임기를 시작하며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먼저 “미술관의 국제적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어떤 검열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하 회견 전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바르토메우 마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한국어로)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돼서 기쁩니다. 저를 신뢰해주신 대한민국 문체부와 환영해 주신 한국의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10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 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접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감히 저를 한국 미술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씀 드리긴 어렵지만 한국 미술작가들의 열렬한 팬이기에 미술관장을 맡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또 다양한 세대의 한국 미술작가들의 뛰어난 작품 수준에 강한 흥미를 느낍니다.

제가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를 과천관에서 열었을 때 처음 국립현대미술관과 인연을 맺었고 그 이후 두어 차례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었습니다. 아직은 제가 서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자리에서 국립미술관에 대한 세부 기획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했을 때 내놓았던 내용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살펴보고 싶습니다. 우선 저는 30년간 미술 제도 내부에서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미술비평가, 교육자, 큐레이터, 관장을 했고 설치작업을 직접 해 본 작가이기도 합니다. 또 25년간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다양한 미술기관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견고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수의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후원가들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 네트워크가 국립현대미술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저는 콘텐츠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관장형 큐레이터로 정의합니다. 많은 작가와 함께 직접 작업했습니다.

또 저는 국제적 맥락 하에서 지역적 내러티브를 부각하는 데 전문가입니다. 현대미술에서는 미술관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국제적으로 많은 기관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제가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제가 할 일은 주요 미술관으로서 국제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이미 한국의 작가들이 직접 시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작가와 예술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 현지의 창조적인 작가들의 도움으로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제적 위상과 명성이 업그레이드 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3년간 현대미술관의 프로그램을 강화해 일반 관람객과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미술관의 정체성이 형성되는데요. 저는 미술관이 단순한 현대미술의 컨테이너가 아닌 생산자의 역할도 맡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현대미술의) 연구에 집중할 것입니다.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연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계와 연구에 집중할 것이고요. 이를 위해 한국의 연구기관뿐 아니라 해외 연구기관과도 협업할 것입니다. 또 국제적인 책을 발간해 학술기관과 저희의 인지도를 높일 것입니다.

또 미술관을 둘러싼 창조적인 예술 조직과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심화된 방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미술관의 관람객이나 이용자들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저희 콘텐츠를 봐 주는 분들이 아니라 저희 작품 활동에 참여해주는 주체라고 봅니다. 또 지속적인 교육을 하는 미술관이 되고 싶습니다. 교육은 이용자들에게 이렇게 해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도록 권유하는 형태가 될 겁니다. 이런 과제들을 최대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합니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가치와 약속의 선언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선 어떤 검열에도 반대할 것이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입니다. 이런 보장 없이는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예술가들과 일할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언제나 예술가들 옆에 동반자처럼 일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활동할 것입니다. 이런 상생 없이 우리가 예술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뛰어난 작품, 뛰어난 담론, 뛰어난 경험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또 의견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근현대 미술의 당연한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기자 여러분들도 저의 동반자입니다. 한국민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제 마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도착한지 얼마 안돼서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만, 비판적이면서도 너그러운 관점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리 관장의 임명 직전, 유럽에서는 지지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고, 반대로 국내 미술인들이 검열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서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국내 미술인들과 국외 미술인들이 서명으로 대립하는 모양새가 됐는데, 국외 미술인들의 지지 서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지지 서명이 마리 관장과 개인적인 연관이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거듭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저는 검열에 반대하고 책임이 수반되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반대 서명을 했다는 사실은 애석하고 아쉬운 사실이지만,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것을 기준으로 저를 판단하시기 보다는 앞으로의 활동을 봐 주셨으면 합니다.

-올해 3월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에서 ‘짐승과 주권’기획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내리도록 요구하고, 전시를 중단시키고, 큐레이터 두 명을 해고한 것이 저희가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사건을 설명한 공개된 문서가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이 문서를 기자분들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전시 공개가 연기된 것은 전시에 대한 정보 중 일부가 저에게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결국 제가 지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전시 개관 즈음해서 사건이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관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회에 사표를 내고 그만뒀습니다. 큐레이터의 해고 관련한 내용은 거짓입니다. 제가 공개적인 성명을 통해서도 이런 식으로 오보를 한다면 명예훼손죄로 고발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사실을 분명히 말씀 드리면 제가 관장직에서 물러난 날짜는 3월 23일입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관장으로서 어떠한 권한도 없었습니다. 해고된 큐레이터들은 계약이 4월 1일부로 끝난 것으로 알고 있고, 이사회에서 명령을 내렸기에 사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사임 후 한국에 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을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미술계도 역동적이고 한국이 갖고 있는 특수한 정치적 문화적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면 올수록, 보면 볼수록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미술관장직이 공모됐을 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업무의 스케일이 좀 바뀌었습니다만 이 또한 저에게는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일입니다. 저는 미술관 제도에 익숙하고 그 면에서는 편안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검열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거기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검열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작가나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오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일을 할 때는 자유도 있어야 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예팀과 전시팀에게 자유롭게, 과감하게 일하라고 조언할 것입니다. 우리는 게임의 법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 관장에게 한국 미술계 내 ‘파벌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요?

=미술 전시에 대해 제가 가장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탁월성입니다. 미술관은 뭘 하든 탁월함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옵션이 있으면 무조건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한국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을 텐데 어떨까요?

=제 목표는 1년 안에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한국어를 습득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 1년 만에 네덜란드어를 배워서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갔었습니다. 많은 동료분들이 인내심 있게 저를 지켜봐 주셔야 하겠습니다. 제게 시를 쓸 수 있는 수준까지 한국어를 배울 능력은 없지만, 어눌한 한국어로라도 작가들과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미술계의 히딩크’ 역할을 기대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유한 내용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월드컵 때 한국이 8강전에서 스페인을 꺾었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에 대한 교훈, 이런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부담이 좀 되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예술은 팀간 경쟁이 아닙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와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으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습니다.

-파악하고 계신 한국 현대미술의 상황 현실과, 해결하고 싶은 과제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세 가지 정도로 답변해 주십시오.

=우선, 한국의 근현대 미술 담론이 아직 부족합니다. 설령 담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해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많은 유능한 작가와 뛰어난 작품들을 연결시키는 하나의 묶음 담론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한국 미술 제도와 미술기관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국이 최초로 시각예술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를 탄생시킨 바 있습니다. 미술과 사회 사이의 관계 모델을 구축하는 적합한 장소가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수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 현실에 맞는 미술을 개조해서 예술이 공공영역에 존재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관의 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유럽인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 왔습니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봐도 이 시점에서 이 경험은 아주 특별합니다. 이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을 위한 특별한 일을 하고 싶고요. 또 이를 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현대미술가와 현대미술관 팀과 함께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팀 플레이어입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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