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종필ㆍ책과함께 대표
2003년 4월에 출판사 등록을 하고, 이듬해 5월 서울대에서 열린 역사학대회에 첫 책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을 들고 참가했다. 창업한 지 한 해가 훌쩍 넘도록 첫 책을 못 내고 있던 터라, 그 해 역사학대회에는 꼭 몇 권이라도 들고 참여하고 싶었다. 책을 마무리하던 날, 출판사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밤을 새웠다. 사장을 포함해 출판사 식구가 세 명이던 시절이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2015년 역사학대회에서 테이블 두 개에도 다 진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역사서의 힘을 믿는다’는 마음으로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 역사교양이라는 한 분야로 100여 종의 책을 출간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한 권 한 권 사연도 많다.
첫 책은 출판계 선배가 중국 청(淸)대의 ‘요술 대공황’과 사스 사태를 연결 지어 소개한 한 신문 기사를 보고 추천해 주었다. 청 왕조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뻔했던 이 사건은 허무맹랑한 소문에서 시작됐다. 1768년 부유한 절을 질투한 가난한 절의 중이 부유한 절 근처의 한 석공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훔쳐낸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공포는 광기를 불러왔고 급기야 사회 전반의 치안공백을 야기시켜 황권 체제 전반에 막대한 파장을 일으킨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학자 필립 쿤은 괴소문을 모티프로 하여, 겉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에 실제로 지방관료들이 어떤 식으로 담합하여 사실을 은폐했으며, 역으로 이를 왕조 전복이라는 정치적 음모로 몰아 지배를 강화한 황제의 통치 방식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2004년 출간 때만 해도 이처럼 역사적 사건을 통해 특정 시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귀한 시절이었다. 이 점이 다른 책들을 제치고 첫 책으로 낙점하는 계기가 됐다. 번역자인 이영옥 교수가 북경대 재학 시절 이 책으로 수업을 듣기도 한 터라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책은 서점 판매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는데, 2004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도 선정되어 신생 출판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해 6월 중국에서 ‘자오훈(叫魂: 1768年中?妖?大恐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청대 역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중국인들도 높이 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립 쿤은 한국어판 서문에 “우리는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있으며, 평범한 시민들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은 (…) 선량한 사람들에게 반국가적인 위험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공포와 의심을 조장했던 지난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러한 생각을 잘 담아 책의 표지를 만들어준 디자이너와 책과함께는 오랜 세월을 같이했다.
그때, 행복해지기 위해서 출판을 한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을 잇는 일, 그것이 ‘책과 함께’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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