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로 초를 받았다. 방향효과도 있는 예쁜 초 세트. 왜 이걸 줬을까, 따져봤다. 별 뜻 없다 해도 받는 입장은 그렇지 않다. 내 몸에서 퀴퀴한 냄새라도 났던 걸까. 고요한 밤,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뜻일까. 문득, 반 고흐의 일화가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촛불에 손을 대며 “내 손이 다 탈 때까지 내 고백을 받아주시오”라 했다던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외로움과 질병 속에 혼자 미쳐갔던 화가의 기행은 그걸 직접 겪던 사람들에겐 괴물의 소동이었겠지만, 후대엔 모국의 문화 산업을 이끄는 아름다운 전설로 치장됐다. 거기 내 입장을 빗댈 의돈 없다. 프랑스의 이론가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을 ‘불이 우는 물’이라 했던가. 이것도 정확한 건 아니다. 아무튼 초를 보고 있으니 일순 세계가 이 작은 심지 주변으로 둥글게 모이며 은밀히 숨은 전모를 밝혀 달라 속삭이는 듯하다. 그래, 쉽게 불을 붙이기 주저한다. 불은 어떤 균과 독을 박멸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내 안에 쌓인 많은 독이나 폐해들을 이 작은 불이 씻어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몸의 체기를 느긋하게 데워 그것들이 고운 향으로 피어나길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초를 아끼기로 한다. 초와 관련한 기형도의 시구 중 이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이봐, 힘을 아껴 봐” 물론, 이 역시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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