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훈 사진기자 현대사 사진집 발간
박정희 서거부터 황교안 청문회까지
36년간 정치현장 찍은 200여점 모아
“3년만 더 채우면 50년인데 여러 사정상 그만둬야 해서 아쉽지. 건강도 그렇고. 그래도 사진기자는 카메라를 들 수 있을 때까지 은퇴란 없는 거니까.”
47년째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권주훈(72) 뉴시스 사진영상부 편집위원은 은퇴를 앞둔 소감을 묻자 덤덤한 표정으로 “아쉽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현역 기자로 일하다 하루 아침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실감 나지 않는 듯했다. 권 위원은 47년의 사진기자 인생을 마감하는 의미로 최근 사진집 ‘렌즈로 쓴 혼돈과 격동의 역사’(눈빛 발행)를 펴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정부 발표를 시작으로 올해 황교안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까지 36년간의 정치 현장을 200여 점 사진으로 펼쳐 보이는 책이다. 사진집 출간에 맞춰 지난달 30일~이달 1일 국회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9일 본보 편집국을 찾은 권 위원은 “일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후배 사진기자들과 현장에 나가면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충남 강경 출신인 권 위원은 경향신문을 시작으로 한국일보, 동아일보를 거쳐 현재 뉴시스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 국회 출입 기자로만 40년 가까이 지냈다. 그는 “1972년부터 한국일보에서 25년간 청춘을 바쳐 일했다”며 “소실된 원본 필름이 많아 사진집에 담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에서 일하며 권 위원은 여러 장의 특종사진을 찍었다. 1986년 5월 이동수 서울대생이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며 학교 학생회관 4층에서 몸에 불을 붙인 뒤 투신자살하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그 당시 찍은 대표작 중 하나다. “원래는 당시 수배 상태였던 문익환 목사를 취재하러 간 건데 학생들 분위기가 심상찮아서 그 쪽을 보다 우연히 찍게 된 거지. 계엄령 때문에 정작 우리는 못 쓰고 외신이 먼저 그 사진을 썼어. 하루인가 이틀 지나서 쓸 수 있었지.”
사진집은 시기에 따라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발표와 장례, 그를 시해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재판,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 현장을 목격한 두 여인의 출정 뒷모습을 모은 ‘서울의 봄’으로 시작해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담은 ‘민주화의 대장정’, 대통령의 선거 유세와 정치적 사건을 다룬 ‘대선과 대통령’을 거쳐 국회에서 벌어진 온갖 사건ㆍ사고를 기록한 ‘여의도 국회에서’로 끝을 맺는다. 대선 현장과 국회를 주로 취재하다 보니 대통령과 관련한 기억이 많다. 권 위원은 “모든 일을 본인이 직접 관리하던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김영삼 대통령은 모든 일은 보좌진이 알아서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들의 유세 현장 취재가 사진기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특히 직선제 개헌 후 첫 선거를 앞두고 있던 1987년 대통령 후보 유세 현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혼돈의 중심이었다. 돌멩이, 각목, 화염병 등이 날아다녀 헬멧을 쓰고 취재를 해도 부상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권 위원은 “날아온 피켓에 맞고 쓰러진 후배도 있었고 돌멩이에 맞아 들어 누운 후배도 있었는데 유독 나만은 비켜갔다”며 웃었다.
때로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그는 “사진은 역사를 빛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라며 “글을 쓰는 기자보다 정확한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은퇴 후엔 독도 사진을 찍을 계획이다. 권 위원은 “1990년 처음 독도에 간 이후 여러 번 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날씨 때문에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독도의 아름다운 모습과 독도에서 바라본 별 사진을 더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