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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한 바람이 분다… 짬뽕라면대전

입력
2015.12.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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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육수를 베이스로 사용해 국물맛이 진한 팔도 '불짬뽕'. 팔도 제공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사용해 국물맛이 진한 팔도 '불짬뽕'. 팔도 제공

역사는 2015년을 ‘지지부진’으로 기록할 테지만, 라면의 역사에서만큼은 찬란하게 빛나는 한 해였다. 가공식품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앞으로 동네 중국집들은 좀 힘들겠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공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맛의 반경을 놀랍도록 확장시킨 이 감탄문들의 주어는 바로 짬뽕라면.

가히 ‘짬뽕라면 대전(大戰)’이다. 올 여름을 강타한 프리미엄 짜장라면에 이은 2차전으로, 오뚜기 ‘진짬뽕’, 농심 ‘맛짬뽕’, 팔도 ‘불짬뽕’, 삼양 ‘갓짬뽕’, 풀무원 ‘꽃새우짬뽕’ 등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목 안이 칼칼해진다. 식품회사들이 동시에 동일 신제품군을 쏟아낸 것도 라면사(史)에서 매우 보기 드문 ‘사태’. 대형마트에선 산더미처럼 쌓인 짬뽕라면들을 배경으로 시식ㆍ판촉행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동네 슈퍼와 편의점에선 품절사태가 빈번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다 보면 어느 차에선가 한 봉지씩 들고 내리는 사람들을 꼭 보게 되는, 나는 못 산 바로 그 라면. ‘3대 짬뽕라면’으로 불리는 오뚜기 진짬뽕, 농심 맛짬뽕, 팔도 불짬뽕을 비교, 평가하기 위해 한국일보 기자 시식단을 꾸렸다. 각 짬뽕라면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특징을 알아보고, 콩쿠르 심사위원처럼 맛과 식감을 채점해봤다.

국물길을 파놓은 탱탱한 면발의 농심 '맛짬뽕'. 농심 제공
국물길을 파놓은 탱탱한 면발의 농심 '맛짬뽕'. 농심 제공

쿡방이 불러온 짬뽕라면 열풍

짬뽕라면은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농심의 ‘오징어짬뽕라면’이다. ‘꼬꼬면’과 함께 하얀 국물 열풍을 일으켰던 ‘나가사키 짬뽕라면’도 있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짬뽕라면이 지금 갑자기 핫한 음식으로 재부상하게 된 이유는 뭘까? 뜨거운 국물이 간절해지는 계절이 올해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올해 짬뽕라면 열풍일까?

먼저 짬뽕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우리말 은어일 것 같은 단어 짬뽕은 일본어에서 유래된 어엿한 영어단어다. 참폰(Champon) 또는 찬폰(Chanpon). 온갖 재료를 뒤섞는다는 어원을 고스란히 안고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한 만만찮은 위력의 단어다. 일본 에도시대의 유일한 개항지였던 나가사키를 접두어처럼 붙이고 다니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탕면은 역사적 유래가 분명하게 기록돼 있다. 1899년 중국 푸젠성(복건성)에서 나가사키로 이주한 천핑순이라는 중국인이 시카이로라는 중화요리집을 개업한 후 가난한 노동자와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싸고 푸짐한 요리를 먹이기 위해 고안해낸 음식이 바로 짬뽕. 식재료라면 무엇 하나 버리지 않는 ‘짠돌이’여서 다른 음식들을 만들고 남은 온갖 재료를 썰어 기름에 볶아 손님상에 내놓았고, 이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정식 메뉴가 됐다는 설도 있다. 이름이 짬뽕이 된 것은 푸지엔성 사람들의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였던 ‘흘반(吃飯)’의 발음이 ‘샤뽕’ 또는 ‘셋뽕’이었다는 주장과 잡다하게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드는 모습을 일컫는 옛 나가사키 방언이 ‘짬뽕(ちゃんぽん)’이었다는 등 설이 분분하다.

핵심은 짬뽕이 수많은 요리를 만들고 남은 여러 가지 재료들로 만들어진다는 것.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새우, 오징어, 굴, 조개, 대파, 숙주, 양파, 당근, 양배추, 표고버섯, 목이버섯 등의 10여 가지의 건더기용 재료를 돼지기름 라드에 볶은 다음 돼지뼈와 닭고기를 우려낸 육수를 부어 끓인다. 200도가 넘는 고온의 강한 화력이 필수다. 여기에 라면보다 굵고 우동보다는 가는 굵기의 면을 넣고 삶아 먹는다. 한국식 짬뽕은 중국 산동성 초마면이 인천으로 넘어온 화교들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 자생적인 탕면으로 고춧가루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빨간 국물로 먹기 시작했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인데, 잡다한 재료들을 ‘짬뽕해’ 만드는 방식은 동일하다. 중화요리지만 중국에서는 먹을 수 없고, 일본과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기존의 짬뽕라면이 짬뽕을 지향하는 라면이었다면, 최근 뜨겁게 달아오른 짬뽕라면 열풍은 라면이라는 접미어를 떼버려도 좋을 정도로 중화요리집의 짬뽕맛을 제대로 재현해냈다. 온갖 잡다한 재료와 불맛을 내기 위한 센불, 탱탱한 면발이라는 짬뽕의 3대 요소를 집에서는 갖추기 힘들다는 것, 짜장과 달리 짬뽕이 가정요리의 메뉴가 되지 못했던 이유다. 프리미엄 짬뽕라면이 개당 1,500원에 이르는 고가임에도 전국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중국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짬뽕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오뚜기 홍보실의 김승범 차장은 “올해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가 쿡방과 셰프테이너인 데다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중화요리가 소개되면서 소비자들이 중식을 더욱 친숙하게 여기게 됐다”며 “특히 짬뽕은 집에서 국물맛을 내기가 어려운 요리 중 하나라 진짜 짬뽕맛을 내는 라면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토실토실한 건더기가 위용을 자랑하는 오뚜기 '진짬뽕'. 오뚜기 제공
토실토실한 건더기가 위용을 자랑하는 오뚜기 '진짬뽕'. 오뚜기 제공

건더기는 ‘진’ 면발은 ‘맛’ 국물은 ‘불’짬뽕

각 사의 짬뽕라면 출시는 예상된 경쟁이었다. 앞서 라면사를 다시 쓴 프리미엄 짜장대전이 있었고, 계절적 요인으로 인해 이 바람이 짬뽕으로 옮겨 붙으리라는 건 쉽게 예견되는 바였다. 올 9월 가장 먼저 프리미엄 짬뽕라면을 내놓은 오뚜기는 농심이 ‘짜왕’으로 시장 판도를 바꿔놓는 동안 짬뽕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대중적인 중화요리지만 가정에서 조리시 들어가는 재료가 많고, 특유의 맛과 향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 기존 짬뽕라면은 짬뽕 본연의 맛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많아 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프리미엄 짬뽕을 개발한다면 시장의 폭발적 반응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시장 선점자로서의 입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진짬뽕은 시장 여론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국물맛에 ‘먹고 놀랐다’는 반응이 많다. 라면에서 양배추와 오징어가 씹히는 풍부한 사양의 건더기는 압도적 위용을 자랑하지만, 넓적한 칼국수 면발은 호불호가 갈린다.

라면의 명가 농심이 11월 출시한 맛짬뽕은 차별화한 면발과 강한 불맛으로 경탄을 불러일으키며 제대로 도전장을 던졌다. 맛짬뽕의 가장 큰 특징은 국물이 따라 흐를 수 있도록 홈이 파인 ‘3㎜ 굴곡면’이다. 농심은 올 초 ‘면 모양 다양화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고 전담팀을 구성, 면 모양, 탄성, 식감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우육탕면’과 ‘짜왕’에서 선보인 굵은 면발을 시리즈 제품으로 잇따라 출시할 계획을 세우고, 짬뽕에 가장 적합한 면발로 개발한 것이 3㎜ 굴곡면이다. 올해의 요리 대세 백종원은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짬뽕면은 반드시 국물에 적셔 먹어야 한다. 면만 건져 먹는 것과 국물에 흠뻑 적셔 먹는 것은 그 맛의 차이가 크다. 짬뽕면을 국물에 적실 경우 그 맛이 국물에 흡수돼 더 맛있다”고 말한 바 있다. 면발에 짬뽕 국물이 얼마나 잘 흡수되느냐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농심 R&D 면개발 연구원들이 개발한 굴곡면은 실타래처럼 꼬인 탱탱한 면발 사이로 얼큰하고 진한 짬뽕 국물이 잘 배어들도록 만들어져 짬뽕 특유의 맛과 풍미가 극대화되는 것이 게 최대 강점이다. 농심 홍보실의 윤성학 차장은 “실험실에서는 잘 구현되던 굴곡면이 대량생산만 하면 번번이 모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소모된 밀가루만 50톤이 넘는다”고 전했다. 한 번만 떠먹어봐도 불맛이 확 끼치는 얼큰한 국물맛은 ‘이것이 과연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국물인가’라는 찬탄과 너무 인위적이어서 쉽게 질린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짬뽕라면마다 맛이 다른 건 사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국물맛이 진한 팔도 '불짬뽕', 둥근 면발이 탱글한 농심 '맛짬뽕', 건더기가 압도적인 오뚜기 '진짬뽕'.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짬뽕라면마다 맛이 다른 건 사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국물맛이 진한 팔도 '불짬뽕', 둥근 면발이 탱글한 농심 '맛짬뽕', 건더기가 압도적인 오뚜기 '진짬뽕'.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달 출시된 팔도의 불짬뽕은 진한 국물맛으로 중국집 짬뽕에 가장 근접한 풍미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팔도 연구팀은 육수 베이스의 접근법을 달리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도모했다. 전국의 짬뽕집을 순례하며 시식하는 과정은 모든 식품회사가 거치는 것이지만, 팔도는 육수의 재료에 개발의 주안점을 뒀다. 팔도 홍보실의 임민욱 과장은 “보통의 중국집에서는 해물육수로 짬뽕을 만들지만, 맛집으로 알려진 짬뽕 전문점에서는 고기육수를 베이스로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사골을 베이스로 한 짬뽕라면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강한 불맛을 내는 야채 엑기스와 풍부한 야채건더기를 첨가해 고기육수의 느끼함을 시원한 맛으로 잡아준다. ‘짬뽕은 역시 해물이지’라고 여기는 전통적 미각에는 다소 느끼하게 여겨지는 반면, 육식을 즐기거나 진한 국물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환호한다. 면은 2.5㎜로 타사들의 3㎜에 비해 얇다.

한국일보 시식단의 평가 역시 첨예하게 갈렸다. 취향(taste)은 다양하다고 할 때 이것이 왜 입맛과 같은 단어인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오뚜기 진짬뽕을 먹고 “라면의 신천지를 접했다”며 ‘올레’를 외친 라제기 기자, “볶은 야채향이 밴 불맛에 반했다”며 팔도 불짬뽕을 최고로 꼽은 김혜영 기자, “불맛 라면의 신기원을 연 농심 맛짬뽕이 최고”라는 황수현 기자만 봐도 누가 1등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제조사 간 개발 경쟁이 단순한 ‘미투 전략’을 넘어서 각자의 노하우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낸 거죠. 이런 경쟁관계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던 거고요.”(팔도 임민욱 과장) 소비자는 즐거운, 짬뽕라면의 백화제방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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