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스님과 함꼐 걸어나오며
조합원들 응원에 주먹 불끈
자승스님과 20분간 면담 후
회견 마친뒤 일주문으로 향해
"야무지게 싸워나갑시다" 구호
언론·야당에 서운함 표출도
10일 오전 조계사 은신 24일 만에 자진 퇴거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신병이 인도될 때까지 큰 충돌이나 소란은 없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24분쯤 조계사 관음전 2층 구름다리를 통해 스스로 걸어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모습을 드러낸 그의 옆을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함께 걸었다. 승복 대신 청색 민주노총 조합원 조끼를 입고 나타난 그의 얼굴은 수염이 덥수룩했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구름다리를 지나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위원장님 걱정 마세요”라고 응원하자 주먹을 불끈 쥐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도법 스님과 함께 대웅전으로 이동해 1분간 삼보일배한 한 위원장은 한국불교역사문화관을 방문해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과 약 20분간 면담했다. 한 위원장의 이동 길목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조계사 관계자들이 인간띠를 형성했다.
조계종에 고마움을 표시한 면담 절차가 끝나자 다소 엄숙했던 현장의 분위기는 일순 바뀌었다. 오전 10시50분쯤 조계사 생명평화법당 앞 기자회견장에 조합원 100여명의 호위 속에 등장한 한 위원장은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비정규직 철폐’라고 적힌 머리띠를 비장하게 묶은 뒤 작심발언을 쏟았다. 그는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 노동자입니다”라며 여론에 호소했다. 또 30분 동안 이어진 회견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는 언론, 노동개혁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야당에 대한 서운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오전 11시10분쯤 회견을 마친 한 위원장은 조계사 정문 격인 일주문으로 향했다. 그는 일부 조합원들이 눈물을 보이자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별 거 아니야. 울지마”라고 다독였다. 기자회견 장소에서 100m도 채 안 되는 일주문까지 걸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마지막으로 한 위원장은 “야무지게 싸워나갑시다”라고 소리치고 구호를 외친 뒤 도법 스님과 두 손을 맞잡고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종단과 한 위원장의 입장을 배려해 25개 중대 2,000명의 경력을 조계사 외곽에 배치한 채 기다렸던 경찰은 한 위원장이 일주문 밖으로 걸어 나오자 체포영장을 제시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수갑을 채우고 호송차량에 태워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이송했다. 한 위원장이 관음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53분 만이었다.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이틀 뒤인 16일 밤 조계사로 몸을 숨긴 한 위원장은 관음전이 있는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의 4층에 머물러왔다. 그동안 그는 옥상에 몇 차례 올라간 것 외에는 방문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가전제품이 없는 이 곳에서 한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 한 명과 같이 지내면서 휴대폰으로 외부와 연락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중간중간 108배나 독경을 하고, 조계사와 민주노총 측 인사와 만나는 일 외에는 특별한 일과 없이 하루를 보냈다. 또 같이 머문 조합원이 외부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지난달 30일부터 백남기씨의 쾌유를 위해 단식에 돌입했다.
하지만 “조계사가 수배자의 장외투쟁 근거지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자신의 페이스북에 “객으로 한편으론 죄송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참는 게 능사가 아닐 것 같다”고 조계사 측을 원망하는 글을 올리고 2차 집회가 평화롭게 끝나면 자진 출두하겠다는 약속까지 어기면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9일 오후 5시10분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 직전 종단의 극적인 중재 제안이 받아들여져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 위원장은 여론의 압박 속에 결국 24일 간의 조계사 은신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김경준기자 fred@hankookilbo.com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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