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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일베, 현실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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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일베, 현실 파고든다

입력
2015.12.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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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EBS 프로그램 ‘보니하니’에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시청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이름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달 EBS 프로그램 ‘보니하니’에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시청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이름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영향력이 사회 저변으로 급속히 파고 들고 있다. 일베에 등장한 전직 대통령 조롱 노래가 중학교 축제에서 패러디 돼 이용되고, 어린이 TV 프로그램에도 ‘문자 테러’를 하는 등 행동도 대담해지는 추세다. 우리 사회의 보수화 기류와 맞물려 일베의 극단적 행동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A중학교 축제 동영상에는 교복을 입은 한 중학생이 ‘응디시티’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뮤직비디오로도 만들어져 일베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노래는 일베 이용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가사에는 노 전 대통령의 말투와 과거 행적을 희화화하고, ‘팍 올라갔다 확 내려갔다’ ‘저 부엉이 바위 쪽으로 가자’ 등 고인의 죽음까지 조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동영상에는 이 중학생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자 수십명의 학생들이 즐거워하며 가사와 후렴구를 따라 부르고, 일부는 무대로 뛰어 올라가 노 전 대통령이 과거 TV에서 보여준 요가 동작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일베는 특정 지역과 여성, 진보세력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여과 없이 드러내 왔는데 어린 학생들까지 별다른 의식 없이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9일 “일베의 과격한 표현과 생각이 반항, 모방 심리가 강한 10대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들이 도덕적 거리낌 없이 증오의 정서를 내면화하면 장차 사회 갈등을 악화시킬 개연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학교 관계자는 “일베 노래인 줄 알았다면 학교 차원에서 적극 제지했을 것”이랴며 “학생이 노래를 일부 패러디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도 비판했고, 요가 동작은 뮤직비디오를 본 학생들이 비판 의식 없이 따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베 이용자들의 그릇된 인식은 심지어 어린이를 상대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침투했다. 지난달 E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보니하니’는 생방송 중 ‘부엉부엉’ ‘노봉하’ ‘전땅크왕’ 등의 이름으로 ‘두화니와 함께 하는 보니하니’ ‘오랜만에 보니 너~무 기분 좋아요’ 등의 자막을 내보냈다. 보니하니는 시청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보내면 자막에 띄우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문제는 노봉하(노무현+봉하마을), 전땅크왕(전두환+탱크왕), ‘너무(노무) 기분 좋다’ 등의 표현이 모두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거나 독재를 미화하는 일베 용어라는 점이다.

'응디시티' 유튜브 동영상 캡처
'응디시티' 유튜브 동영상 캡처

일베 이용자들이 보니하니 프로그램을 무대로 ‘문자 테러’ 유희를 즐기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이수민(14)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양을 ‘여신’으로 부르며 매일 방송을 보고 일베에 후기를 올릴 정도로 열광하고 있다. 일부 회원은 초등학생을 가장해 보니하니 프로그램 게시판에 “춤을 춰 달라”는 글을 남기도 했다.

온라인에 머물던 일베의 영향력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10대 일베 회원이 신은미·황선씨의 통일토크콘서트에서 사제폭탄을 던진 적이 있다. 지난달에는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경찰의 직사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69)씨가 “경찰이 아니라 시위대에 맞아 쓰러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은 그 근거로 일베를 중심으로 퍼진 루머와 동영상을 제시했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심지어 국회의원도 일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일베가 ‘주류화’되고 있다”며 “사회가 보수화돼 일베의 행동에 대한 관용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일베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주목을 끌기 위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며 “극단적 행동 수위가 더 높아지기 전에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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