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이라면 뉴욕타임스(NYT)를 챙기는 게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을 읽는 건 물론이고 수시로 인터넷으로 속보를 검색해야 합니다. NYT가 중요한 건 미국 언론 중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칼럼이나 사설은 미국 정치권이나 행정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연히 NYT가 한국이나 북한, 또는 북미 관계에 대해 사설이나 칼럼을 게재하면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진보성향의 이 신문이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을 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등이 현 정권에 반대하는 집단을 표적으로 삼고 진행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이전인 11월13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독자 칼럼이 실렸습니다.
한국에서 우리끼리 입장이 갈려 대립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미국 신문까지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걸 보면서 정부 차원의 해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8일 현재 세 차례의 반론 보도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반론을 제기한 게 누굴까요. 바로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었습니다. 부산외국어대 교양학부의 제임스 매키버 교수였습니다. 매키버 교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과거사를 세탁하려는 게 아니며, 좌편향된(The leftist version) 현행 교과서가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보다 정확하고 중립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국정화 반대 진영의 가장 큰 논리인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미화’주장은 가당치도 않은 한국 좌파 정치인들의 과장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더니 12월2일에는 안양옥 교총회장이 11월13일 독자 칼럼을 비판하는 반론문이 올라왔습니다. 현행 교과서가 한국전쟁 등 과거사를 편향되게 서술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우리 외교관의 반론은 뉴욕 총영사 명의로 12월8일 나왔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보낸 걸 NYT가 지금껏 내보낸 게 아니라면, 우리 외교부 대응이 미국 교수보다 늦은 것입니다. 반론 내용도 한국 거주 미국인이나, 교총 회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워싱턴을 찾은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설혹 우리 논리가 틀렸더라도 국익을 위해서는 나아가서 주장하는 게 외교관의 임무”라고 말했습니다. 외교에서도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가 봅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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