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렉시테리언 채식주의자이다. 어떤 단계의 채식을 하느냐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히 어설픈 페스코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세분화된 채식 단계를 확인해보았다. 우유, 달걀, 꿀처럼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을 먹지 않고 식물성 식품만 먹는 단계가 비건이다. 생선과 해물까지 먹으면 페스코, 닭고기까지 먹으면 폴로 베지테리언, 채식을 하지만 아주 가끔 육식을 하는 준채식주의자는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한다.
네 발, 두 발 달린 동물을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의지를 쉽게 무너뜨리는 음식은 김밥이다. 라면에도, 봉지 과자에도 소고기, 돼지고기 분말이 들어가 있고, 과일젤리에도 돼지고기의 젤라틴이 있다. 치킨, 삼겹살을 먹지 않아도 김밥, 라면, 과자, 젤리 때문에 페스코가 될 수 없다.
8년 전 반려견 꿀꿀이(12세ㆍ시추)를 키우면서 개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게 채식 지향의 계기가 됐다. 그 때 정한 나름의 원칙은 사람을 알아보는 동물을 먹지 말자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물고기도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지만 일단 사람과 눈을 맞추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고 내가 느끼는 동물을 기준으로 삼았다. 달걀, 고기가 공장식 축산을 통해 공급되는 것을 알면서 채식 지향은 더욱 강화됐다. 채식을 지향하는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노력하자’에 의미를 두면서 나름의 기준을 지켜오고 있다.
날이 추워지면서 최근 비건 패션이라는 단어가 대두됐다. 비건 패션은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비건처럼 동물을 학대하면서 얻은 소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8년간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 내 옷장을 들여다 봤다. 두툼한 패딩은 거위나 오리의 솜털, 깃털로 채워져 있고 모자에는 차이니즈 라쿤이 둘러져 있다. 살아 있는 거위나 오리의 깃털을 뽑지 않는다며 착한 패딩이라고 불리는 옷에 붙은 털 모자의 소재는 덫에 걸려 총으로 희생된 코요테였다.
얼마 전 KBS의 글로벌 정보 프로그램 ‘세계인’에서 비건 패션을 주제로 다뤘다. 패딩의 모자 장식에 주로 사용되는 라쿤은 익사를 시켜 털을 얻는다. 털과 가죽의 손상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밍크는 산 채로 가죽을 벗긴다. 죽은 뒤에는 가죽 벗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털을 손으로 뽑을 때 앙고라 토끼는 눈물을 흘린다. 가방에 주로 사용되는 뱀은 물을 먹여서 불린 다음 산 채로 가죽을 벗겨냈다.
마음에 드는 카키색 패딩이 있는데 가격도 적당하고 디자인도 좋아 살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소재는 거위 솜털, 모자에는 차이니즈 라쿤이 둘러져 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는 이상 아무리 예뻐도 그 옷에 손이 갈 것 같지 않아 사지 않기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동물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는다. 하지만 예전보다 지금은 대량 생산과 멋을 위해 많은 동물들이 잔인하게 죽어간다. 상품을 고르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뻔한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건 쉽지 않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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