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끝자락에 선 지금, 한국 축구심판들께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신지요.
아마도 많은 심판들이 한 해 동안 묵묵히,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고도 안녕하지만은 못할 거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도 심판으로서 어느 해보다 열심히 활동한 한 해였지만, 그리 안녕하지만은 못합니다. 최근 심판계에 드리운 불신의 그림자 때문입니다.
지난달 축구계는 특정 프로축구팀의 심판 매수 의혹이 불거지며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총 5명의 전·현직 K리그 심판을 비롯한 다수의 심판 관계자들이 피의자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3일 부산지방검찰청 외사부가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구단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전 K리그 심판 최모(39)씨와 현 K리그 심판 이모(36)씨를 구속 기소하고 다른 두 명의 K리그 심판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로축구계에서는 ‘올 것이 왔을 뿐’이라는 의견이 이곳 저곳서 들렸습니다. 안종복 전 경남FC 사장의 비리 관련 수사를 계기로 밝혀진 일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닐 거란 얘기도 쏟아졌습니다. 프로축구 판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선수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전국 단위 학원축구 대회만 돼도 토너먼트 진출팀 학부모들이 ‘심판비’를 걷는다는 소문은 10년 째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한 지역 심판협의회 총회에서는 미숙한 회계처리가 도마에 올라 심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심판과 돈’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열심히 활동 중인 대다수의 심판들은 어렵게 쌓아 온 신뢰가 무너지진 않을지, 작은 실수조차 의도된 오심으로 보진 않을지 걱정부터 합니다. 심판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A심판은 “(심판 생활을)계속하다 보면 나도 비슷해질까 두렵다”며 “벌써부터 환멸을 느껴 그만 두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반대로 이번 일이 환부를 도려낼 기회란 시각도 있습니다. 은퇴심판 B씨는 “실제로 부적절한 행실로 구설에 오른 심판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 심판들 때문에 심판계 전체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고, 되레 신념을 지켜 온 심판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심판 C씨는 “심판계를 자주 흔드는 것은 옳지 않지만 부정 행위에 대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심판의 운영 및 배정 시스템의 맹점을 개선해 갈 필요도 있다”고 말합니다.
심판이 아닌 한 축구관계자는 “학연·지연으로 인한 폐해는 아직도 축구계를 좀먹고 있다”며 “이 시점에서 그들이 왜 ‘No’를 외치지 못했는지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실 심판이란 안녕하기 참 힘든 위치입니다. 축구 경기에서 빠져선 안될 존재지만, 주목 받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스물 두 명의 선수를 응원하는 이는 많지만, 심판을 응원하는 이는 없습니다. 선수와 지도자의 습관적인 항의도 듣고도 못들은 척 넘길 때가 많습니다. 분도 삼키고, 하고픈 말도 삼킵니다. 경기 중 물 한 모금 삼키고 싶을 때도 참아야 하고, 선수처럼 맘대로 교체 할 수도 없어 경미한 부상 정도는 참고 뜁니다. 결정적 실수를 했을 때의 자책감과 대가도 무겁습니다. 명예 같은 건 국제심판쯤이나 돼야 바라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마저도 얻기는 힘들지만 잃기는 쉽습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것들을 감내할 정도로 넉넉한 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아닙니다. 끝나면 박수 쳐주는 이 하나 없습니다. 그걸 겪어보고 지켜봐 왔기에 더 안녕하지 못했던 요즘이었습니다.
하지만 올 한해 운동장 위에서 많은 심판 동료들과 땀 흘린 날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 위안이 됩니다. 아직 대다수의 심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본연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2016년 심판 활동을 위한 체력테스트에 함께 참가하면서 마음이 더 놓였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정직한 웃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판들의 이 웃음들이 앞으로 더 밝아졌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신뢰 회복을 위한 심판 전체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심판운영주체인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프로축구연맹의 역할도 큽니다. 프로경기 심판조합(PGMOL·Professional Game Match Officials Limited)을 설립해 심판 운영의 독립성을 갖춘 영국이나 ‘스페셜 레프리’를 둔 일본 등은 제도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심판운영의 새 방향을 모색하는 프로축구연맹과 심판 통합운영을 이야기하는 대한축구협회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머리를 맞대고 국내 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저는 올해 체력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2016년 활동을 쉬게 됐지만 2017년에는 또다시 함께 땀 흘리고,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축구심판 여러분, 올 한해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016년엔 올해보다 더 안녕한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a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