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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사시 존치는 ‘앙시앙 레짐’으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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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사시 존치는 ‘앙시앙 레짐’으로의 귀환

입력
2015.1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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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풍경.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풍경.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경희대가 얼마 전 새로운 실험을 발표했다. 학교가 자회사를 세워 서울캠퍼스 135명, 수원캠퍼스 129명의 청소 용역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경희 모델’로 불리는 이 실험은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계속되는 청소 용역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모델이 성사되는 데 공헌한 숨은 주역이 있다. 바로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임주환 변호사다. 국문과 출신으로 신문기자를 하다 로스쿨에 늦깎이로 입학한 그는 변호사시험 합격 후 민간단체 희망제작소에 들어갔다. 그 뒤 모교 경희대를 법정 드나들듯 쫓아다니면서 일군 첫 결과물이 바로 경희 모델이다.

임 변호사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를 로스쿨 체제의 이상적 모델로 꼽는 한 로스쿨 교수를 만난 적은 있다. ‘임주환 사례’에선 학부전공 공부를 내팽개친 채 도서관에서 육법전서만 파고, 변호사가 되어서는 법조계의 견고한 카르텔 속에 고액의 수임료만 좇는 사시 체제의 음습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로스쿨은 우수한 인재들이 바늘구멍 같은 사시 통과에만 매달려 청춘을 허비하고, 합격한 소수만 지나친 기득권을 누리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2009년 처음 시행한 제도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2017년 예정됐던 사시 폐지를 4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사회양극화, 부의 대물림이라는 시대 분위기 속에 계층상승 통로로 기능했던 사시에 대한 향수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시는 더 이상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가 아니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면 방세와 학원수강비만 월 100만원 이상이 든다. 출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해 혹자는 “지문과 보기를 배배 꼬아 실수한 사람을 떨어트리는 시험”이라고 평한다. 준비기간만 10년이 넘는 사시 낭인도 즐비하다. 합격률 3%만 바라보고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에겐 실패 했을 때 리스크가 더 큰 시험인 셈이다. 차라리 등록금 대비 장학금 비중이 40%고, 그 중 80%는 가계곤란자에게 지급하는 로스쿨이 더 낫다는 분석이 일리가 있다.

최근 한 법조인에게 전해 들은 웃지 못할 사례도 사시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판사 출신 변호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몰리더란다. 법원을 떠난 지 한참 지나 전관예우 대상도 아니라 경위를 알아봤더니 사정은 이랬다. 새로 부임한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양형이 엄하기로 소문났는데, 법조인맥검색 사이트에서 대학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그가 1순위 연관 법조인으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스펙과 근무지가 일부 겹쳤을 뿐 해당 부장판사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고액 수임료는 이런 비합리적인 사시 카르텔 속에서 형성돼 왔다.

사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을 배출하는 시스템도 아니거니와 설령 용이 나왔어도 그 개천을 버려온 역사의 반복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 우리 국민은 이들에게 월급까지 주면서 한 해 500억원을 사법연수원 예산으로 지출했지만 지금도 수임료 걱정에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다. 독일에는 상점 물건값 환불 같은 소액민사 사건을 상담해주거나 소장을 써주고 10만원도 안 되는 비용을 받는 마을변호사도 많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무변촌이 넘쳐난다.

로스쿨에 여러 문제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돈스쿨’ 지적도 있고 몇몇 유력인사들의 과잉 자식사랑으로 ‘현대판 음서제’라는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과거제와 닮은 사시 체제는 국가인재 등용 측면에서 시대에 뒤처지고 효율성이 떨어진, 누군가 폐해의 매듭을 끊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앙시앙 레짐’이었다. 그런데도 사시 존치가 로스쿨 문제를 보완할 해결책이라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법률전문가가 역경을 딛고 그 어렵다는 사시를 통과한 소수의 ‘성공 신화’인지, 아니면 언제든 주변에서 찾아갈 수 있는 임주환 같은 변호사들인지 자문해보면 해답은 자명하다.

사회부 김영화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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