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나무들을 본다. 모두 앙상해졌다. 서 있는 것 자체가 노역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거기 피었던 꽃들을 떠올려본다. 시간은 엄청난 거짓말 기계 같다. 그 수려하고 화사하던 것들이 검은 뼈만 남고 사라졌다. 내년 봄이면 다시 피겠지만, 그 피어남이 마냥 축복일 것 같지만은 않다. 만물이 다 그럴 것이라 생각하니 지나는 사람 하나 하나가 다 신기루 같다. 나 역시. 찬바람이 분다. 메마른 이파리들이 간신히 매달려 용을 쓴다. 죽기 싫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가 힘겹고 안쓰럽다는 듯 가녀리게 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같으나, 스스로도 그게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잎과 열매가 나무의 말이라면, 지금 나무들은 입이 봉해진 침묵의 조형물과도 같다.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말이 한때의 부질없는 꿈에 불과했다는 걸 자인하듯 기우뚱 서있을 뿐이다. 소생과 소멸의 투명한 법칙 아래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그 순응 자체가 어쩌면 나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언이고 자기 확인인지 모른다. 그래서 봄이면 열렬히 광합성하며 해의 말들에 잎과 꽃으로 대답하는 걸 수도. 최근, 내가 했던 말들은 어땠나. 어떤 목적과 욕망과 바람을 담은 말들. 그런데, 그것들이 과연 누구에게 꽃으로 보이고 잎으로 무성해졌을까 모르겠다. 혹시 독은 아니었을까. 나무를 본다. 긴 침묵을 본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