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창업 지원금을 빼먹은 유명 벤처투자자, 허위 진료기록으로 요양급여를 타낸 요양원장, 연구개발(R&D) 보조금을 횡령한 환경업체 대표…. 국가보조금을 가로챈 국고침해 사범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각종 수법을 동원한 이들의 사기 행각에 200억원이 넘는 국가 보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
서울북부지검 재정조세범죄 중점수사팀(부장 손영배)은 올해 7월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는 업계 전반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해 55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등)으로 기소하고 20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7일 밝혔다. 검찰이 6개월 동안 확인한 보조금 편취 규모는 178억9,000만원에 달했다.
사기 수법은 다양했다. A엔젤투자사 이사 김모(36)씨는 창업을 원하는 대학생들을 꾀어 명목상 대표로 세우고 창업 보조금을 받아 빼돌리다 구속됐다. 그가 2012년 한 해 받은 보조금과 대학생 명의로 대출 받은 금액은 5억1,000여만원에 이른다. B창업기획사 대표 강모(35)씨는 기술도 없는 업체를 우수기업으로 양성한다며 산업진흥원으로부터 5억2,000만원을 타냈다가 불구속 기소됐다.
서류를 조작해 요양급여를 꿀꺽한 양심불량 요양원도 있었다. 검찰은 허위 물리치료사 명부로 요양급여 3억6,000만원을 받아낸 서울 송파구 G요양원 대표 원모(61)씨 등 요양원 운영자 5명을 구속 기소하고 2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브로커 강모(56)씨는 이런 불법행위를 하다 적발된 업체에 “행정처분 감경을 돕겠다”며 4억원을 받아가기도 했다(본보 11월 20일자 28면). 시험성적서를 조작해 규격 미달의 오일 여과기를 군에 납품하고 6,700만원을 챙긴 군납업체 부사장 등 공공기관 납품비리에 연루된 6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특히 공공기관 납품비리로 적발된 금액은 116억12,700만원에 달해 보조금 사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손준성 부장)도 이날 환경 분야의 국가 R&D 보조금 3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6개 업체를 적발해 김모(52)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하고 황모(51)씨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환경 관련 R&D 업체 대표인 김씨는 2011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받은 보조금 일부를 R&D가 아닌 회사 운영자금이나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사업실적을 보고할 때는 통장과 세금계산서 내역을 허위로 제출하는 수법을 써 7억2,000만원을 가로챘다.
올해 책정된 국가보조금은 58조원으로 정부 예산의 15.6%을 차지하고 또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그만큼 사기 방식도 지능화ㆍ다양화하는 추세이지만 적발되더라도 처벌은 지급정지나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정 서류만 갖춰 신청하면 우선 지급하고 추후 실사하는 국가 보조금 체계의 맹점을 노려 부정수급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신청 내용의 적정성에 대한 실사를 전담하는 전문위원을 확대하는 등 보조금 전반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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