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재계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처럼 재계 구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 엔화 약세,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 수출 마이너스 성장 등이 기업의 부실 증가로 이어졌던 IMF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IMF 때처럼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는 게 아니냐며 불안에 떨고 있다. IMF 당시 산업계는 여러 기업의 연쇄 파산으로 재계 순위가 바뀌는 대격변을 겪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하는 대규모 기업집단 자산총액 순위(재계 순위)에 따르면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1997년과 올해는 완전히 다르다. 한때 삼성을 제치고 서열 2위(1999년)까지 올랐던 대우는 공중분해 됐고 유동성 위기를 겪던 쌍용(6위) 기아(8위), 동아(13위), 진로(19위), 고합(21위), 해태(24위), 아남(26위), 한일(27위), 거평(28위) 등도 잇따라 무너졌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격변을 정부가 주도한 구조조정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정부는 IMF 위기 극복을 위해 170조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에 깊이 개입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 IMF 때부터 현재까지 30위권에 머문 기업은 삼성, SK, LG, 한진, 한화, 금호아시아나, 두산, 동국제강, 동부, 대림, 효성 등에 그칠 정도로 변화가 컸다.
현대는 LG반도체를 2조6,000억원에 인수해 하이닉스를 만들었지만 반도체 가격 급락과 유동성 위기로 2년 만에 채무불이행 선언을 했다. 반도체를 빼앗긴 LG는 대신 데이콤을 인수했으나 정상화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정부 압력으로 쌍용차를 인수한 대우는 아예 그룹 해체의 길을 걸었다.
반면 한화와 효성은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 없이 자발적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해 대비된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당시 주력 계열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주식과 사재를 담보로 제공하고 경영권 포기 각서까지 쓰며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효성도 동양나일론, 효성중공업 등 우량 계열사와 부도 위기에 몰렸던 효성물산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부실을 털어내 위기를 넘겼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정부가 조바심을 내며 구조조정에 개입하면 커다란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선례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자율적 구조조정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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