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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으로도 엿 만들 수 있다" 명문중학교 입시 오류 시위

입력
2015.12.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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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2월, 무즙으로 엿을 고아 온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시위를 벌였다
1964년 12월, 무즙으로 엿을 고아 온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위원회에서 시위를 벌였다

1964년 12월 7일 서울지역 전기(前期)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18번은 찐 찹쌀밥에 물과 엿기름을 섞어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지 묻는 문제였다.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보기 1번 ‘디아스타제’를 정답으로 발표했다. 학부모들은 2번 보기의 ‘무즙’도 정답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침과 무즙에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당시 명문중학교 입시는 요즘의 대학 입시만큼 치열했다.

서울시교육청(당시 교육감 김원규)은 다음날 “1번만 정답”이라고 발표했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9일 “해당 문제를 무효화한다”고 밝힌다. 이제 1번을 선택한 학생들의 부모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교육청은 또 다시 “1번만 정답”이라고 못을 박는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실제로 엿을 고아 교육청과 교육위원회에서 항의시위를 벌였고, “엿 먹어라”는 말이 그 뒤로 욕이 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점 차이로 명문고 진학에 실패한 학생 부모 40여 명은 소송을 제기했고, 이듬해 3월 서울고등법원은 복수정답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불합격된 학생들을 구제하라고 판결했다. 경기ㆍ서울ㆍ경복 중학교와 경기여중은 5월 전입학 형식으로 해당 학생들을 합격시켰다.

67년 12월 전기중 입시에서는 ‘창칼파동’이 빚어졌다. 미술 13번 문제(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쓰고 있는 그림을 물었다)의 정답이 애매해 복수정답 시비가 빚어졌고, 경기중학교가 복수정답을 인정하자 그로 인해 낙방하게 된 학생 부모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법원은 경기중의 복수정답 인정을 재량권 남용이라며 낙방생 17명을 구제토록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고법 판결을 번복, 환소함으로써 사건을 매듭지었다.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와 더불어 도입된 학교 배정 추첨기(일명 뺑뺑이). 한국관광공사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와 더불어 도입된 학교 배정 추첨기(일명 뺑뺑이). 한국관광공사

물론 두 사례가 ‘파동’이 된 데는 무대가 극소수 명문 중학교였던 데다 당시 학부모들이 재판 비용을 대고 여론화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계층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직후인 68년 7월 15일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 문홍주)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중학교 평준화)를 발표했다. 후유증이 적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조치였다. 대학별고사(64~68년)를 대체하는 대학입학 예비고사-본고사제도(1969~1981년)도 뒤이어 발표됐고, 12월에는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됐다. 각급 학교 학생이 체벌을 당해가며 암기해야 했던, 집단주의 교육의 표본이었다. ‘헌장’은 94년 선포 기념행사 폐지와 함께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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