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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솟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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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솟대문학

입력
2015.12.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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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숱한 해를 받아 읽는 새 한 마리/포근한 내일을 햇살 깃털로 흩어 놓을 때/이 땅에 가벼운 그러나 명백한 생의 합창은 커지고/우리의 백 번째 아침이 한바탕 눈부시다’ 장애인 문학지(계간) 솟대문학 100호를 기념하는 권두시 ‘하늘 아침’의 끝부분이다.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로 널리 알려진 시각장애인 손병걸씨의 글이다. 그는 솟대문학 100호 발간에 부쳐 <눈부시다는 말은/그 어떤 표현으로도 적절하지 않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아침을 닮았다>고 썼다.

▦ 솟대문학 창간호가 1991년 4월(봄)에 나왔기에 통권 100호(겨울)는 25년 동안 단 한 번도 발행이 멈춰진 적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척박한 우리 문단에선 전문 문예지도 100호를 넘기기가 드문 일인데, 장애인 문학지로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 동안 한국에서 ‘장애인문학’이란 새로운 장르를 열었고, 전국의 장애문인 1,000여명을 회원으로 하며 160여 명의 문인을 배출했다. 그 결과 ‘장애문인’이란 표현 대신 장애ㆍ비장애 구분 없이 “시인, 소설가, 수필가, 아동문학가”로 불려지는 성과를 얻었다.

▦ 만들고 지켜온 사람은 발행인 방귀희(58)씨다. 1976년 우리나라 최초의 ‘휠체어 대학생’으로 널리 알려졌던 그는 방송에서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솟대문학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해놓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연필이나 볼펜으로 삐뚤삐뚤 메모처럼 써 보낸 글도 있고, 혀나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보낸 글도 있다. 하지만 원고가 모자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선 별도의 녹음도서를 제작해 보내주었다.

▦ 통권 100호, ‘눈부신 아침 하늘’이 솟대문학의 마지막이 될 모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내년부터 재정지원 대상 문예지를 축소키로 하는 바람에 101호를 만들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무료 구독하던 회원들 중 일부는 앞으로 책값(9,000원)을 내겠다고 하고, 회비라도 걷자고 한다. 7일 오후 서울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솟대문학 100호 기념식이 열린다. 손병걸씨 권두시를 다시 인용한다. ‘서로 통증을 어루만져주던 창간의 기억을 품고/우리는 다시 첫 갈피에 새로운 글귀를 새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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