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바이오 인증 시대가 열렸습니다.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도 손바닥으로 카드를 발급 받고 눈동자로 자금을 이체하는 일상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금융당국이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실명확인은 대면으로 해야 한다고 했던 유권해석을 바꿔 이번 달부터 비대면 방식을 허용한 게 발판이 됐습니다.
신한은행을 선두로, 시중은행들은 홍채 지문 등 바이오 인증을 통한 본인확인 도입 논의에 한창입니다. 신한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1일부터 무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에서 손바닥 정맥 인증을 통해 본인확인을 시작했습니다. 손바닥을 기기에 설치된 특수 센서에 갖다 대는 방식으로 본인확인을 할 수 있고, 카드 발급, 예ㆍ적금ㆍ펀드 가입 등 기본적인 은행 업무가 가능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손바닥에 근적외선을 투과하면 이를 흡수한 혈관 안 헤모글로빈이 까맣게 찍히는데 이게 바로 정맥 지도입니다. 정맥 모양은 사고나 혈관 질환에 걸리지 않는 한, 일란성 쌍둥이를 포함해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습니다. 정맥 인증은 현재 ▦손바닥 ▦손등 ▦손가락에서 활용이 가능한데 이 중 손바닥이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손바닥 정맥이 가장 굵고 복잡하며 많은 혈관이 지나가고, 손가락에 비해 온도에 따른 영향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이오 인증의 정확성은 통상 오인식률(FAR)과 오거부율(FRR)로 측정합니다. 타인을 나로 오인해서 수락하는 게 오인식률이고, 본인인데도 나를 못 알아보고 거절하는 비율이 오거부율입니다. 아무래도 ‘인증’의 특성상 ‘오인식률’이 낮은 게 더 중요합니다. 이번 신한은행의 디지털 키오스크를 개발한 한국후지쯔에 따르면 해당 업체의 손바닥 정맥 인증 기술의 경우 FAR은 0.00008%, FRR은 0.01% 수준입니다. 통상 손바닥 정맥 인증은 현재 활발히 개발 중인 서명, 행동, 안면, 목소리 등 여러 바이오 인증 방식 중 가장 낮은 오류를 자랑합니다. 한국후지쯔 측은 앞으로 손바닥 정맥에 더해 손금까지 인식해 인증의 정확도를 더 높인다는 계획입니다.
손바닥 정맥 인증은 사실 해외에선 이미 익숙한 기술입니다. 일본의 경우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보편화돼 쓰입니다. 브라질의 상업은행인 브라데스코에서는 손바닥 정맥 인증이 연금 수령을 할 때 이용됩니다. 브라질에서도 한국처럼 수급자가 사망했음에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계속 타가는 부정수급이 문제되고 있는데요. 손바닥 정맥 인증을 통해 본인확인과 부정수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바이오 인증의 미래가 장밋빛이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기술의 한계가 첫 번째 넘어야 할 벽입니다. 대표적으로 홍채인식의 경우 손바닥 정맥 인증과 같이 높은 정확도를 지니지만, 아직 ‘안경’이나 ‘컬러렌즈’에 따른 본인확인 인증 오류를 온전히 극복해내지 못했습니다. 손바닥 정맥 인증도 손에 상처가 나서 붕대를 감으면 인식이 어려워 양쪽 손을 다 등록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지문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주민센터에 가서 손쉽게 서류를 발급 받기 위해 무인 기계 앞에 섰다가 지문인식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애초에 여러 번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을 하고 위치나 오차를 감안해서 이미지를 저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정맥 같은 신체 내부 정보와 달리 지문은 외부에 노출된 정보이다 보니 복제를 통한 위ㆍ변조의 위험성도 높습니다.
만에 하나 생체정보가 유출되면 영구적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위험도 따릅니다.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바꿀 수 있고 보안카드를 분실하면 재발급 받을 수 있지만 생체정보는 유출이 돼도 갱신이 어렵습니다. 그러한 불상사가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최선이겠죠. 현재 금융결제원과 시중은행들은 생체정보가 통째로 유출돼 피해를 보는 일을 막기 위해 두 곳에 쪼개서 보관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해킹 공격 등을 받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금융의 비대면채널이 다양해지면서 혁신적인 본인인증 방식의 등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금융권의 여러 신(新)기술이 그 혁신성만큼 ‘안전한 기술’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길 기대합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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