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분노에도 포경 재개
4개월간 밍크고래 333마리 잡아
표본 채취, 자원 조사 등 예정
환경단체 “결국 판매 나설 것”
창고에 방치되는 고래고기
일본인 95% “먹어본 적 없다”
정부 보조금으로 포경사업 유지
우익 “포경 금지는 일본인 해치는 것”
일본인들의 고래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과거 강장제로 인기를 누렸던 고래고기에 대한 향수가 현대에도 적잖이 남아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전 농림수산 장관은 지난해 초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고 호주인은 캥거루고기를 먹는다”라며 일본인의 고래고기 사랑이 비난을 듣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과학적 연구를 내세워 남극해 등에서 꾸준히 포경(捕鯨)을 해온 일본은 그러나 멸종위기에 몰린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밀려 지난해 4월부터 2년 가까이 ‘공식적인’고래잡이를 중단해왔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연구 명목의 포경 허가 프로그램인 ‘자프라2’에 의한 고래잡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지난해 3월 내린 점도 이유가 됐다.
2년여 만의 포경에 국제사회 분노
고래를 겨눈 작살을 잠시 거둬들였던 일본은 그러나 다시 포경에 나섰다. 최근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등에 따르면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본의 ‘조사 포경’선박 4척이 1일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關)시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했다. 일본 정부가 국제포경위원회(IWC)에 11월 제출한 계획서에 따라 12월 하순부터 내년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남극해에서 고래잡이를 나선 것이다. IWC과학위원회가 과연 일본 정부가 계획서대로 ‘조사 포경’을 과학적으로 진행할 것인지 그 타당성을 놓고 재차 논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떠난 배’를 붙잡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160명을 나눠 태우고 출항한 4척의 배들은 이번 포경을 통해 밍크고래 333마리를 포획해 피부 표본 채취, 크릴 새우 분포 및 자원량 조사 등을 벌인다.
하지만 국제사회와 환경보호단체들은 이번에도 일본 포경선들이 ‘과학적 조사’를 진행한 후 고래고기를 국내로 들여와 판매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매년 연구를 내세우며 포경에 나서는 일본은 2005년 이후 남극해 포경으로 확보한 고래 유전자 샘플링과 관련 논문은 고작 2건 내놓는데 그쳤다. 과학과 연구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고래 남획을 치장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호주 정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와 기관이 일본의 포경 재개를 목소리 높여 비판한 것은 물론이다. 그레그 헌트 호주 환경장관은 “연구목적이라는 핑계를 들어 고래를 살해하는 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고 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말콤 턴불 호주 총리도 고래잡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을 일본 정부에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는 일본과 아이슬란드 등 포경 찬성 국가들의 웹사이트 공격에 나섰으며 해양환경 보호단체 ‘시 셰퍼드’도 강력 반발했다.
대다수 일본인 “고래고기 안 먹어”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어째서 일본인들은 국제사회의 질타를 당하면서까지 포경에 이토록 집착하는 지이다. IWC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1986년 상업 목적의 포경을 IWC가 금지하기로 한 이후에도 일본이 세계 곳곳에서 포획한 고래는 1만4,000마리가 넘는다. 단지 시장이 원해서일까. 하지만 객관적인 수치들은 일본인들이 과거와 달리 그다지 고래고기를 선호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일 미국의 인터넷 매체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에 따르면 2014년 설문 조사결과 일본인의 95%가 평생 한 번도 고래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88.8%는 지난 1년간 고래 고기를 구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들이 거짓 대답을 한 게 아니라면 일본인들의 끈질긴 포경이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 단정하기 어려워진다. 당장 일본 전역 항구들의 냉동고에서 팔려나갈 날을 기다리는 고래고기가 450만㎏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본의 포경 의지를 단순히 ‘돈’으로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국제적으로 반 포경 정서가 널리 퍼져 수출길이 막혀있는 가운데 내수마저 이처럼 부실하다면 고래고기 시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수준으로 보여진다.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의 고래 보호 프로그램 담당자인 패트릭 라마지는 “일본인들이 과학 목적을 내세워 진행하는 포경사업은 경제적으로 무의미에 가깝다”라며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은 이 죽어가는 산업에 4억달러를 들이부었다”고 말했다. CSM은 “고래고기를 팔아 이익을 본다는 업자는 극히 드물다”라며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정부의 보조금 정책 때문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1967년 국민 1인당 1년 동안 1.9㎏이나 소비했던 고래고기는 2005년엔 57g으로 소비량이 뚝 떨어졌다. 이에 따라 값도 폭락해 1994년 450g 당 13.6달러였던 고래고기가 2006년엔 평균 7.45달러에 거래됐다.
일본 언론들도 고래고기가 실상 소매시장에서 인기를 잃고 있지만 일종의 ‘문화적 고집’으로 인해 꾸준한 포경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테크인사이드는 성장동력이 사라진 고래고기시장을 일본 정부가 포기하지 않는 것은 “국가 정체성과 식문화 전통, 어업 권리 방어, 관련 산업의 취업시장 보호를 위해서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인들은 고래포획을 문화적 영역으로 확대해 해석하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시각이 있다. CSM은 “일본 우익인사들 가운데 포경을 막는 것을 일본인을 해치는 행위와 동격으로 보는 경우가 있으며 많은 사람이 고래고기를 먹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먹지 않지만 소고기를 먹는 사람이 고래를 먹어라 마라 하는 게 불쾌하다’는 답을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전세계 어느 민족보다 생선 섭취량이 많은 일본인이 고래고기를 빌미로 식량주권이 침해 받는 것을 원치 않고, 이로 인한 반작용이 포경으로 연결된다는 진단도 있다. 주간 도쿄경제(東京經濟)는 “만일 포경에 있어 한 발 물러날 경우, 국제사회는 곧이어 일본의 참치사냥을 걸고 넘어질 것이다”고 경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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