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환경부가 내년부터 빈 병 보증금을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 주류 가격 인상 논란이 가열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달 27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보증금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은 늘어나지만 빈 병 회수 효과는 불분명하다”며 보증금 인상 철회를 의결했습니다. 주류 업계는 반색했지만, 시행 예정일(내년 1월 21일)을 한달 앞 두고 환경부는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환경부는 회수 체계 개선방안 등 내용을 보완해 이달 중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지만 최종 결론이 어떨지는 미지수입니다.
빈 병 보증금 인상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해 1994년 이후 동결돼 온 소주, 맥주병 보증금(현행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을 각각 100원, 130원으로 인상하는 정책입니다.
빈 병 보증금을 지금보다 2배 이상 올리려는 건 기본적으로 빈 병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현재 85% 수준인 재사용률이 독일 등 선진국 수준인 95%까지 올라가면 570억 원 정도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환경부는 설명합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연간 20만 톤 감소하는 등 환경보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네요.
환경부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빈 병 보증금 인상은 자연스럽게 주류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돌려 받는 돈이라곤 해도 무거운 빈 병을 모아뒀다 다시 반납하러 마트로 들고 간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류업체만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법도 합니다.
환경부가 우수 사례로 지목하는 독일의 경우 2003년 도입된 ‘판트(Pfand)’제도가 빈 병 회수 문화를 정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독일에서 1.5리터 복숭아 아이스티를 구매한다고 하면 음료수 값 45센트에 빈 병 보증금인 판트 비용 25센트를 합해 총 70센트(약 850원)를 지불해야 합니다. 가격표에도 이 가격이 구분돼 표시돼 있습니다. 다 마신 병은 마트나 생활권 곳곳에 있는 무인회수기를 통해 반납하고, 받은 영수증으로 다시 마트에서 현금처럼 사용하는 식입니다. 음료수 값 절반 이상을 빈 병 보증금으로 낸다는 소리인데 정작 독일인들은 큰 불만이 없다고 하네요. 빈 병 보증금을 일종의 환경 부담금으로 생각하고 자원 재활용에 적극 동참한다는 의미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국내 빈 병 보증금 인상 논의에서 빠져 있는 부분은 환경보호라는 제도개선의 근본취지인 것 같습니다. 송년회 시즌을 맞아 주류업계를 중심으로 술값 인상에 대한 우려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빈 병 회수가 소비자와 주류업계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왜 빈 병 보증금을 올리려고 했는지 근본취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일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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