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토메우 마리 새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임명에 검열 우려를 제기한 미술인 모임인 ‘국선즈(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가 4일 밤 2차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 서명한 약 80명의 미술인들은 “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의 대화 요구에 반응하지 않은 채 관장 선임을 강행했다”며 “국립현대미술관을 검열ㆍ통제하려는 시도를 거두고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 신임 관장에게는 ‘검열과 통제에 반대하는 윤리 선언’을 요구했다. 마리 관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이었던 올해 3월 전시 작품을 철거 지시했다가 검열 논란에 휩싸여 사퇴한 전력이 있다.
성명서에는 박찬경 정서영 홍영인 작가와 김현진 전 아르코미술관장 등 활동 중인 작가들이 서명했다. 이하 서명 전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에 대한 우리의 입장>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는 12월 2일 바르토메우 마리 씨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선임하였다. 이에 앞서 831명의 미술인은, 유력 관장 후보인 바르토메우 마리 씨의 검열 의혹에 대해 명확히 밝힐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은 채 관장 선임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일방적인 행정을 보며, 우리는 또 한번 권력의 두꺼운 벽과 마주친다. 수많은 미술인의 요구를 묵살하는 이러한 폐쇄행정 자체가 문화예술에 대한 냉혹한 무관심이다.
우리 미술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과정에서 드러난 문화행정, 더 넓게는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기조에 대해 또 한번 입장을 밝힌다.
1. 국립현대미술관은 관장 없이 1년 동안 파행운영되었다. 그 동안 문체부는 납득할 수 있는 아무런 상황설명도 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규정을 바꿔, 관장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축소하는 대신 정부의 권한을 키우기도 했다. 이제 다시 국립현대미술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 해야 한다. 예술외적 권위에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미술관에 넘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예술의 자율성을 해치는 어떠한 검열과 통제의 시도도 포기하는 것이 좋다.
2.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그 어느 곳보다도 자유로운 지성과 미학이 장려되고 보호받는 곳이 되어야 한다. 죽은 이념과 상투화된 감각에 도전하는 동시대 예술의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예술표현의 자유와 미술관의 자율성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이를 넓혀가야 한다. 일체의 권력으로부터 검열과 통제에 반대하는, 신임 관장의 공개적인 윤리선언을 우리는 요구한다.
3. 국립현대미술관은 단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큐레이터의 새 직장만이 아니다. 세계 각지의 공공미술관은 각 지역마다 정체성과 지향이 다를 것이며, ‘세계적 미술관’은 지역의 살아있는 예술현장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다. 추상적이고 공허한 ‘세계적 수준’을 되뇌는 대신, 이제 새 관장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밝혀야 한다.
4. 우리의 우려는 미술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검열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연, 문학, 영화 등에서 예술인들은 정부기관에 의한 검열과 통제의 사례를 연이어 목격하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국정교과서로 획일화된 역사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검열과 통제는 갈수록 교묘해져, 사전검열과 자기감시를 낳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결국 자신에게 재갈이 물렸는지도 알기 어려운 시대가 올지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우려하는 것의 핵심이다. 우리는 비열함이 서로를 감싸주는 사회를 상상하기 싫다.
검열 의혹에 대한 바르토메우 마리 씨의 해명이 궁색한 변명인지, 정당한 변호인지는 이후 그의 행보에 많이 달려있다. 우리는 이를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며, 그가 우리의 요구에 행동으로 답하길 바란다.
우리는 미술뿐만 아니라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는 현정부의 획일화 기획을 보고 들으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시대의 퇴행을 절감한다. 우리 미술인들은 예술표현의 자유는 물론, 검열 없는 사회를 위해 다양한 학술적, 예술적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억압, 타협, 오해, 갈등의 부담을 안고서도, 자신의 의견을 떳떳하게 개진하려는 개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나가도록 하자.
2015년 12월 4일 1차 서명인 77명
공성훈 권순우 권혁빈 김기라 김남시 김범 김상돈 김성열 김세진 김실비 김영글 김용익 김웅용 김종길 김지영 김지원 김지평 김진 김진주 김학량 김해주 김현진 김홍석 김희진 남선우 노순택 노충현 문혜진 바이홍 박가은 박건 박보나 박승원 박영숙 박원주 박재용 박진아 박찬경 백현진 송희정 서고은 서동진 안규철 양아치 우아름 우정수 우정인 유지원 윤율리 이경희 이미연 이성희 이양헌 이영욱 이영철 이윤호 이정민 임민욱 임영주 임흥순 장혜진 조은지 조지은 조혜진 전용석 주황 정서영 정은영 진시우 차재민 차지량 최빛나 최윤 최지혜 최진석 최한결 홍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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