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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 김화영 “번역이란,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싱싱한 것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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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 김화영 “번역이란,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싱싱한 것과의 만남”

입력
2015.1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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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번역인생 정리한 '김화영의 번역수첩' 펴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작가들을 70년대부터 국내에 번역 소개한 장본인이다. 문학동네 제공
40년 번역인생 정리한 '김화영의 번역수첩' 펴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트릭 모디아노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작가들을 70년대부터 국내에 번역 소개한 장본인이다. 문학동네 제공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가 선정된 뒤 서점을 찾은 이들은 작가의 책이 이미 열 권 넘게 번역돼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무라카미 하루키, 필립 로스, 조이스 캐롤 오츠 등 익숙한 후보들 가운데 모디아노의 이름은 비교적 생소했기 때문이다. 모디아노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40년 전부터 그의 책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학자가 있다. 김화영(75) 고려대 명예교수는 1974년부터 부지런히 프랑스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해 100권이 넘는 책을 낸 불문학자이자, 모디아노를 비롯해 르 클레지오, 로맹 가리, 로제 그르니에, 미셀 투르니에 등을 가장 먼저 혹은 초기에 국내 소개한 장본인이다.

그가 지난 40년 간 번역한 책들의 역자 후기를 모아 ‘김화영의 번역수첩’(문학동네)을 펴냈다. 1974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잃어버린 얼굴’을 시작으로 1977년 모디아노의 국내 첫 책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를 비롯해 15종 이상의 모디아노 책을, 미셸 투르니에의 사진집 ‘뒷모습’이나 자크 프레베르의 시집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등 대표작이 아닌 책들도 꾸준히 찾아내 번역했다.

김 교수는 번역에 매력을 느낀 계기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오직 살아남기 위해 “타자의 언어”를 습득했던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서나 동일한 언어 내에서나 ‘소통’은 언제나 일종의 ‘번역’이다. 모든 번역 이론가들이 지적하듯 ‘번역을 연구한다는 것은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다’.” 언어의 다양한 층위와 미묘한 차이에서 소통과 고독의 비밀을 발견한 소년은 상과대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물리치고 서울대 불문과에 진학한다. 본격적으로 프랑스 문학 번역에 발을 들인 것은 1969년 말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엑상프로방스 대학에 유학을 가면서다. 1974년 사강의 신간 ‘잃어버린 얼굴’을 번역한 그는 나름의 원칙을 세운다. 즐거운 번역만 하자는 것. 그는 사강의 책에서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문장의 묘미나 번역의 재미에 끌리지 않은 작업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이로울 것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는 의욕적으로 ‘작가 발굴’에 나선다. 국내에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흥미로운 텍스트라고 판단되면 출판사에 적극 제안하는 식으로 작업 방식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당시 출판사들은 외국 문학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노벨문학상, 공쿠르상 정도나 받아야 관심을 기울이는 게 현실이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78년 출판사를 차린 친구로부터 적당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김 교수는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번역해 보냈다. 당시 모디아노의 나이 만 32세로, 페네옹상, 로제 니미에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 주목 받는 작가였으나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번역본을 받아 든 친구는 ‘무명 작가’란 이유로 출판을 주저했고 그 해 모디아노는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한국이 아직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던 때라 다른 출판사들이 발 빠르게 해적 번역판을 출간한 것은 물론이다.

국내 불문학 번역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김 교수는 지난해 한 출판사의 대표로부터 그가 번역한 알베르 카뮈 ‘이방인’이 “오역”이란 공격을 받기도 했다. 출판사 측의 노이즈 마케팅이란 의견과(출판사에서는 새로운 번역으로 ‘이방인’을 펴냈다) 최고 권위의 불문학자를 향한 용기 있는 이의 제기란 평가가 엇갈렸다. 이에 대해 불문학자인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씹어 먹여주는 식의 번역에서 오는 몇 가지 오류”가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번역이라고 평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당시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지만 올해 새로 번역한 ‘이방인’ 역자후기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명기했다. ▦독자의 가독성을 돕는 의역을 가능한 한 피하고 원문의 탈색된 문체를 그대로 유지 표현한다 ▦카뮈의 원문이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는 한,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인과관계나 시간적 선후 관계에 대한 해석을 임의로 추가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번역 인생 40년을 맞은 노교수가 새삼 번역의 원칙을 재정립한 데는, 번역이 소통의 다른 이름이며 언어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번역이 삶이 된 그에게 재번역은 곧 삶의 갱신일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요 우주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젊고 싱싱한 것은 우리들 저마다의 새로운 ‘탄생’이다. 그 탄생과 더불어 삶도 역사도 의미도 가치도 늘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카뮈 ‘최초의 인간’ 역자 후기 중)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2001년 열린책들)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2001년 열린책들)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파트릭 모디아노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1991년 세계사)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파트릭 모디아노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1991년 세계사)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알베르 카뮈 '이방인' (2012년 책세상)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알베르 카뮈 '이방인' (2012년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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