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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증권가 봄날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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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증권가 봄날은 가나

입력
2015.1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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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세판
주식시세판

박근혜 대통령이 재작년 3월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각종 주가조작에 대해 법 위반 사항, 자금 출처, 투자수익금 출구, 투자경위 등을 철저히 밝혀 (방지책을) 제도화하고 투명화해야 한다”고 발언했을 때 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처음 주재하는 국무회의, 그 무거운 상징성을 지닌 자리에서 거론되기에 ‘주가조작 방지’는 지엽적 사안이란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정부조직법 통과, 대형 국책사업 철저 점검, 복지공약 실천 등 그날 “막중한 국정 과제”로 함께 꼽혔던 의제와 비교해도 무게가 한참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부도덕한 개인으로 짜인 작전세력도 아닌, 자본시장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증권회사 및 자산운용사가 줄줄이 주가조작을 포함한 부당거래에 연루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요즘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증권범죄 근절을 최우선 국정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다. 정부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발족한 그 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지난 10월까지 대주주 및 대표이사 6명 포함 200명 구속기소), 현재 합수단이 소속된 서울남부지검이 올해 4월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된 이후 적발한 주요 불법행위만 살펴도 증권업계의 복마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4월엔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가 7개 증권사 중개인과 결탁, 채권매입 결제 시점을 조작해 위험수익을 추구하는 ‘파킹거래’를 하다가 적발됐다. 7월엔 주가연계증권(ELS) 주가 조작으로 투자자들에게 수십억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한 증권사가 검찰 수사를 받았다. 8월엔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한국지점 전직 임원이 시세조종 세력과 금융회사를 연결해주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줬다. 코스닥 상장사의 불법 블록딜(장외 대량 주식매매)을 도운 혐의로 증권사 직원이 구속됐던 10월엔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로 단번에 황제주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여러 자산운용사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고수익을 올린 정황이 드러났다. 이달 초엔 돌려막기식 불법 내부거래로 연기금 투자자금을 유치해온 대형 증권사 임직원들이 기소됐다.

“증권맨들의 폐쇄적 접촉 창구였던 온라인 메신저의 대화 기록이 검찰 손에 넘어갔으니 수사 대상이 급속히 확대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증권가의 흉흉한 분위기는, 그 동안 적발된 증권범죄의 대다수가 업계 관행처럼 이뤄져 오던 일이라는 검찰의 지적과 맞닿아 있다. 수법은 제 각각이지만 결국 고객 돈으로 사익을 추구한 범죄행위로 귀결된다. 이런 와중에도 “앞으로는 대화 기록이 남지 않는 ‘텔레그램’ 메신저를 사용하자”고 저들끼리 작당하는 증권맨들이 적지 않다는 풍문은 시장의 분노를 증폭시킨다.

감자 줄기라도 잡아당긴 듯 증권범죄가 잇따라 드러나는 일차적 이유는 그릇된 관행에 무감한 업계 현실과 이를 근절하려는 정부 의지에서 비롯하겠지만, 모처럼 찾아온 증시 호황이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된 측면도 적지 않다. 올해 상반기 증시가 저금리 기조의 반사이익으로 호황을 보이며 증권업계는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다. 금융당국 또한 자본시장 활성화를 강조하며 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었다.(지난 3월 취임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내 (관료)경력 중 가장 오랜 자리가 증권과장”이었다) 대우증권 인수경쟁이 증권사 간 경쟁으로 좁혀지면서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불릴 만한 초대형 증권사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하다.

증권업계의 봄날은 그러나 미국 금리인상, 기업 실적 부진 등 대내외 변수에 부닥치며 빠르게 물러나는 분위기다. ELS 대량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온 증권사의 편의주의적 영업전략은 증시 급락에 따라 대규모 자산운용 손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여기에 거듭되는 불법행위로 자본시장의 신뢰 위기마저 가중된다면, 증권업계는 엄혹한 구조조정기를 거쳐 어렵게 마련한 회복의 발판을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훈성 경제부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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