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강제합병을 검토했다는 이야기가 최근 이슈가 되었다. 금융위원회가 합병 검토를 사실이 아니라고 해 일단락 되는 듯도 하지만, 그 간 합병설이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에 그냥 흘려버릴 일은 아니다.
시장의 반응을 보면 양사의 합병이 성공적인 구조조정 방안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합병을 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만성적자로 부채비율이 700%가 넘는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재무구조가 더 부실해 질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두 회사가 합병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만큼 큰 회사도 아니다. 어느 쪽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기 어려워 보인다. 또 두 회사의 과잉 경쟁으로 부실해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합병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어서 해운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조선업과 달리 정부 지원 없이 7년 넘게 장기불황을 견디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선사인 머스크라인 콘테이너 부문의 지난 1~9월 세전 영업이익이 15억 6,900만 달러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해운업계의 적자는 해운 불황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실 경영과 정부 당국의 정책 부재에서 원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경제구조가 수출입에 의존하고, 주력 산업 중 조선과 해운, 철강업이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운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금융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은 해운업계의 표면적인 재무구조상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개별 해운업계의 경영 부실 원인을 낱낱이 알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해운업계에 금융 지원을 하려면 업계의 경영 부실 원인을 찾아내 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고, 그래서 언제까지 어느 규모의 재정 지원을 할 때 정상화가 가능할지 가늠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은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주도적으로 찾아내 금융 당국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운 경기를 선행 예측해 불황에 대비한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책임도 해수부가 감당해야 하지만, 해운을 되살리는 것도 해수부의 몫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처럼 단순히 해운업계의 주장을 전달하고 되풀이하는 수준으로는 해수부의 존립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일본 다이이치주오키센(第一中央汽船)의 민사재생을 우리 해운업의 회생 방안으로 참고할 만하다. 해운업계는 호황기에 비싼 용선료로 장기 용선한 선박을 현재 저운임으로 화물운송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에 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이이치주오키센은 민사재생절차를 통해 이들 장기 용선 선박에 대해 현 시세로 용선 계약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계약 해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금융 지원을 통해 해운업계 회생 방안을 찾는다 하더라도 만성 적자의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는 경영구조 개선이 불가능하다. 지원된 재원이 용선료 형태로 해외로 빠져나가 외국 선주들의 배만 불려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금융 지원을 하기 전에 우선 이런 악성채무의 연결고리를 자르는 것부터 선행해야 한다.
해운업계의 구조조정과 금융 지원은 경영권 유지의 수단이 아니라 국내 해운산업을 제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주무부처인 해수부가 제대로 정책을 집행하려는 비상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붕괴 직전까지 내몰린 해운산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새로운 장관이 내정되자마자 해수부 출신은 절대 보내지 않겠다던 해운조합에 해수부 전직 관료를 내정했다는 소문이나 나는 정도로는 결코 위기에 빠진 우리 해운산업을 살릴 수 없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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