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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교보문고와 쓰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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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교보문고와 쓰타야

입력
2015.12.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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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런데 출판계에서 들리는 소리는 몇 년 동안 변함이 없다. 단군 이래의 최대 불황이라는 말만 되풀이된다. 세세한 지표야 다르겠지만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지 않다. 또 내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도서정가제, 전자책, 표절 같은 제도의 변화나 내ㆍ외부적 요인을 접어 두더라도 책을 쓰고 읽는 일이 한국인의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점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 올해 두드러진 현상이다.

도서정가제에 따라 온ㆍ오프라인 서점 사이의 가격 차이가 없어지면서 하나 둘 생겨난 동네 서점들은 별 특색이 없었던 예전의 동네 서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카페와 결합하는 것은 이제 필수가 되었고,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만 책을 꾸리고, 책과 관련된 여러 잡화를 판매하고 이벤트 장소로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등 서점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이 대열에 대형 서점들도 동참하고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무려 5만 년이나 된 나무로 만든 100인용 테이블을 비치해 분위기를 일신했다. 또 디지털 관련 용품, 잡화, 문구 매장도 확대되었다. 서점이 단순히 책만 진열하고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곳이자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곳으로 바꾸겠다는 방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책이 라이프스타일과 밀착되는 전형을 ‘킨포크(KINFOLK)’ 시리즈가 제시했다면, 서점의 변화를 주도하는 곳은 일본의 서점 체인 ‘쓰타야(TSUTAYA)’다. 쓰타야가 도쿄 시부야 인근 다이칸야마 지구에 오픈한 ‘다이칸야마 쓰타야’는 한국 출판계가 따라야 할 모델이자 꼭 가봐야 하는 성지로 부상했다. 이 프로젝트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출간되었을 정도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동네 서점과 대형 서점 모두가 주목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손꼽힌다. 혼을 빼놓을 정도로 혼잡한 시부야 근처이지만 다이칸야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고층 빌딩이나 쇼핑몰이 없고 고급 주택과 부티크, 개성 넘치는 숍과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자리잡은 다이칸야마 쓰타야는 책을 중심으로 만년필을 비롯한 문구, 음반, 피규어, 카메라 등이 포근하면서 고급스러운 공간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리노베이션을 마친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다이칸야마 쓰타야처럼 변신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두 곳에서 똑같은 물건을 살 수 있지만, 소비자의 체험은 완전히 다르다. 다이칸야마 쓰타야의 한쪽 유리 벽에는 수백 자루의 만년필이 전시되어 있다. 주요 브랜드의 거의 모든 만년필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만년필 진열대가 블라인드처럼 사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심이 가는 모델을 말하면 테스트를 해볼 수 있도록 고급 용지가 펼쳐진 책상으로 안내를 받는다. 한 자리에 앉아서 여러 브랜드의 만년필과 잉크를 비교해볼 수 있다. 몽블랑, 워터맨, 펠리컨 등 만년필 브랜드가 공간을 임대해 입점해 있는 국내 서점에서는 돌아다니며 매번 다른 사람을 상대해 가며 물건을 고르고 살펴보아야 한다. 쓰타야는 거대한 에디터숍인 셈이다. 내부 에디터의 의도에 따라 상품을 재배치하고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회적 이슈와 트렌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서점은 백화점이다. 조명을 아늑하게 하고 근사한 상품을 가져다 놓긴 했지만, 공간 체험은 여느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서점들이 일제히 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에 걱정이 든다. 오직 책을 위한 공간이 서울에서 점차 사라지는 와중에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지식 유통을 떠맡으며 꿋꿋이 버텨온 광화문점 교보문고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고서점들이 즐비한 진보초 거리와 가장 땅값이 비싼 긴자 한복판에 150년째 자리를 지키는 서점, 일본의 모든 책을 다 꽂아두겠다는 듯 철저히 서가 중심으로 꾸린 서점이 함께 공존하는 도쿄와 서울은 다르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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