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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쟁의 정치, 나눔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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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쟁의 정치, 나눔의 정치

입력
2015.12.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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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관한 우려는 더 이상 기우(杞憂)가 아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100년 안에 세계 주요 도시들이 물에 잠겨버린다고 한다.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의 우리나라도 이 문제에 관한 책임 주체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한 인후염에 시달리면서도 파리에서 열린 ‘기후 정상회의’에 서둘러 다녀온 이유다.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통해 2030년까지 100조 원대의 새로운 시장과 5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도 있었다. 아름다운 지구를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일,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기본적 책무다. 성장을 위해 환경을 희생하는데 거리낌이라곤 없었던 한국이다. 이번 며칠 동안 파리에서의 대통령 행보를 보면 ‘친환경’ 대한민국을 향한 대견한 변화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복지가 생각난다. 복지나 환경 등 나눔에 관한 정치적 지향이나 제도화는 늘 함께 가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에 관한 연구 분야에서는 유명한 현상이다. 어떤 나라는 복지나 환경 같은 ‘나눔의 정치’를 강조하고, 어떤 나라는 성장이나 효율 같은 ‘경쟁의 정치’에 경도된다. 전자가 좋은 국가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후자가 자유 시장의 역할에 방점을 찍는 것도 잘 알려진 경향성이다. 시장경제를 가장 중시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에서는 소극적인 이유도 이러한 경향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복지국가를 중시하는 유럽국가들이 ‘환경성과지수(EPI)’ 순위에서도 우등생인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복지나 환경 등 분야에서 국가의 역할이 강해질 경우에는 경제적 성과가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대처나 레이건이 그토록 목 놓아 외쳤던 신자유주의의 경구(警句)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복지나 환경쯤이야 잊어버리라는, 더 큰 부(富)를 향한 욕망의 기적소리다. 하지만 OECD 국가들의 경제 성과를 비교해보면 정반대의 관찰 결과가 수두룩하다. 복지와 환경을 위해 국가가 충분히 가동되는 나라들에서의 성장률이나 고용률이 더 높은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나눔의 정치가 잉태하는 훨씬 더 양호한 수준의 사회적 성과까지 고려한다면 경쟁의 정치가 오히려 더 초라한 형국이다.

경쟁 지향의 사회가 나눔 지향의 사회보다 낫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왜 굳이 경쟁사회의 질곡으로 치닫는 나라들이 있는 것일까? 에스핑 안데르센 같은 비교사회정책학 분야 석학들이 내놓은 답을 보자. 모든 사회의 제도는 각각의 이념 지향에 따라 원래 존재하는 유사한 제도들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나눔의 정치와 다툼의 정치로 갈리는 것도 각각의 제도적 유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앙시앙레짐의 자식들인 것이다.

제도적 경로의존이 이렇게 대단하다면, 지금 이대로의 후줄근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한국의 운명일까? 2012년 정국에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정치담론의 폭발을 목도했었다. 그 때,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로 잔뜩 들떴다. 오늘, 경쟁력 있는 야당의 부재 상황이 계속되면서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의 담론들도 덩달아 실종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전환이 여전히 필요한 대한민국, 도대체 누가 바꿀 것인가? ‘깨어있는 시민’의 힘만 있다면 어떠한 문화나 제도도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회과학의 정설을 보면 다행히도 탈출구는 있을 법하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이 국민적 심판을 주문했다. 선거 과정에서 ‘진실한 사람들’만 남겨야 한다고 말한 바로 그 심판 말이다. 이러한 주문은 적어도 원론적 차원에서는 분명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경제적 법안들은 내팽개친 채 정치적 수읽기에만 골몰하는 정치권은 그 자체로 진실하지 못하다. 복지와 환경의 이름으로 재조직되어야 할 시대 정신을 회피하는 자. 한국형 나눔의 정치로의 대전환을 외면하는 자. 정치권의 이 모든 게으름과 천박함이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다. 결국 답은 하나다. 시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안상훈 서울대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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