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수위 높은 질문들이 오갔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이 없다. 막힘 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신예답지 않다. ‘기린과 아프리카’ ‘물리수업’ ‘붐에 피어나다’ 등 여러 단편영화에 출연해 독립영화계 스타로 인정받으며 쌓아 올린 연기 내공 때문이리라.
한예리(31)는 과감한 성적 대화가 오가는 청소년관람불가 로맨틱코미디 영화 ‘극적인 하룻밤’(3일 개봉) 출연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대범한 노출을 단행하고 화끈하게 욕도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적 농담도 내뱉는 당찬 여자 시후를 연기하며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게 로맨틱코미디장르 영화”라며 “기왕 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기 때문에 (노출연기 등을)확실하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기간제 교사인 정훈과 인정받는 셰프를 꿈꾸는 시후(한예리)의 사랑이야기다. 각자의 전 애인 결혼식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실연의 아픔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 결국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만다. 서로에게 끌리긴 하지만 “몸친(몸만 친구) 관계”로 선을 그으며 ‘썸’만 탄다.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는 시후의 말처럼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에게 사랑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여느 로맨틱코미디 영화처럼 뻔한 결말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겨울에 낭만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관객들에겐 제격이다. 그러나 정훈에 비해 시후가 겪은 실연의 아픔과 갈등 등이 다소 빈약하게 그려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로맨틱코미디 영화이지만 수위가 높았다.
“청춘들의 솔직한 연애담을 그렸다. 다른 분들은 오히려 노출 수위로만 봤을 때는 약하지 않느냐는 분들도 있었다(웃음). 하지만 성적인 디테일한 대사를 이해하는 30대 연령층의 분들은 야하다고 하신 분들이 많다.”
-첫 장면부터 베드신이었다
“기왕 하려고 마음 먹은 거 확실하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상에서 정훈은 주변인물들과의 장면이 많아 관객들이 캐릭터를 파악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후는 그런 모습이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임팩트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베드신 어렵지 않았나
“베드신 노출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었다. 왜 그런지 나도 궁금했다. 아마도 윤계상 선배나 하기호 감독님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쳐서일 것이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셨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작품에 들어갔다면 촬영 후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좋은 현장에서 일을 한 게 너무 좋았다.”
-베드신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나
“하 감독님과 함께 많은 여성들이 관람할 것이라 베드신이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조금이라도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느끼게 나오면 안 되니 최대한 여성들이 봤을 때 반감 없게 나오는 게 중요했다. 전체적으로 두 사람이 귀여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봤나
“쑥스러워서 한 번 밖에 못 봤다.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처음이라서 그런지 (연기를)못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 가장 예쁘게 나온 듯하다.
“오로지 예쁘게 나오는 게 목표였다(웃음). 지금까지 무거운 영화만 해서 대중에게 더 친근하면서도 신선하고 사랑스럽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런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몸친’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식으로 연애하는 친구들이 많다. ‘선 스킨십 후 연애’식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애하든지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럼 ‘몸친’ 관계도 가능하다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몸친도 가능하다. 영화 속 시후는 정훈과 몸친이 되면서 자아가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개인적인 연애 스타일은.
“나는 사람에게 잘 질리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한 번 만나면 오래 연애하는 스타일이다. 주변 친구들도 오래된 연인 사이인 경우가 많다.”
-현재 연애하고 있나.
“지금은 일을 해야 하는 시기다. 일하는 게 더 즐겁다. 지금은 연애하지 않는다. 연애가 쉽지가 않다.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어렵다.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 좋다. 토론이나 논의를 잘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느끼는 감정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영화처럼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나.
“기억에 남을 만한 극적인 하루나 밤을 보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극적인 하룻밤’ 촬영을 끝내고 오사카 지역을 다녀왔다. 교토에서 지갑을 주웠는데 8만원 가량이 들어있더라. ‘이 돈을 쓰면 영화가 잘 안 될 거야’라는 생각에 지갑을 잘 돌려줬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 때가 그나마 최근의 극적인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웃음).”
-극중 야구장에서 욕도 시원하게 하더라.
“이게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욕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너무 답답할 때는 산에 가서 소리도 지르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는 건 좋을 것 같다.”
-영화 ‘코리아’에선 북한의 탁구 선수였다. 이번에 이미지 변신이 확실히 됐다.
“‘극적인 하룻밤’은 무척 하고 싶었던 장르다. 로맨스라는 게 모든 여배우들이 사랑하는 장르가 아닐까. 여배우라는 타이틀, 여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장르라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쌍꺼풀이 거의 없는데 수술하고 싶진 않았나.
“많은 분들이 매력적인 얼굴이라고 봐주신다. 조금 더 미의 기준이 다채로워지고 넓어진 것 같아서 너무 좋다. 나도 왜 수술하고 싶지 않았겠나. 무용을 하면서 사춘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성형외과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무용을 해서 무대에서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공연은 아직도 하고 있다. 작년에도 했다.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할 것이다. 세 살 때부터 무용을 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선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학교 다닐 때 영상물 전공하는 친구들이 한국무용하는 장면이 들어가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 때 연기를 처음 했다. 그러다 연기 오디션을 보라는 추천을 받고 독립영화 ‘기린과 아프리카’에 출연을 했고, 그 영화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가 있나.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없든 좋은 배우의 기준이 없다. 영화 ‘사냥’을 촬영 중인데 안성기 선배와 작업을 하고 있다. 선배님처럼 나이를 들어도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