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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깐깐해진 건가요 착해진 건가요

입력
2015.12.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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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회의 잇단 무혐의 결정 논란

“지나친 법원 따라하기가 시장 감시 기능 위축시켜”

“무죄 판결문처럼 공정위도 무혐의 의결서 공개해야”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결 조직인 전원회의가 주요 불공정 혐의 사건에 대해 잇달아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대형 과징금 사건의 대법원 패소로 몸살을 앓던 전원회의가 ‘1심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예전보다 훨씬 깐깐히 사건을 심의한 결과다. 하지만 전원회의의 이런 움직임이 자칫 공정위의 시장 감시 기능 위축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공정위는 KT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과, 스크린골프 1위 업체인 골프존의 부당 공동행위 사건에 대해 전원회의가 무혐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 사무처는 KT가 2007년부터 자회사인 KTM&S에 지급하는 관리수수료에 ‘핸들링 치지’(handling chargeㆍ추가로 위탁받은 업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한 수수료)를 얹는 수법으로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며 사건을 전원회의에 넘겼다. 그러나 전원회의는 이 수수료의 지급 근거가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는 등의 이유로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또 전원회의는 골프존이 2008년 7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더존골프 등 4개 판매법인과 짜고 스크린 골프 시스템 가격의 상한선을 부당하게 정했다는 혐의(부당공동행위)에 대해서도 무혐의로 결정했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지난달에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유동성 위기 당시 계열사끼리 기업어음(CP)을 거래해 부도를 막은 부당지원행위 혐의에 대해 공정위 사무처 의견과 달리 무혐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공정위는 사무처에서 사건을 조사해 심사보고서를 넘기면 9인의 상임ㆍ비상임 위원으로 구성된 전원회의나 소회의가 이를 최종 의결하는 이원적인 구조다. 법조계로 치면 검찰(공정위 사무처)과 법원(전원회의)이 한 지붕 아래 있는 셈이다.

전원회의가 사무처와 엇박자를 내는 일이 잦아진 것은 ‘1심 기능을 강화하자’는 공정위 내부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공정위 관계자는 “2011년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원적지(原籍地) 담합을 했다며 공정위가 과징금 4,300억여원을 부과한 사건에 올 2월 대법원이 공정위 패소로 확정 판결 하면서 ‘1심 기능 강화’ 목소리가 커졌다”고 전했다. 1심 법원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전원회의 의결의 법적 완결성을 법원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사무처가 심사보고서를 작성해서 유죄 의견으로 올리면 전원회의에서 대부분 추인해줬던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변화“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나 공정위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엄격한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야 하는 형사사건과 달리 행정처분을 하는 공정위가 지나치게 심사를 강화할 경우 대기업 갑질 등 불공정 행위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전직 고위관료는 “공정위가 사건의 실체가 불공정이냐 아니냐보다, 절차적 하자나 사소한 증거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충분히 행정제재가 가능한 불공정 사건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면서 “절차적 하자 등은 보완하게 해서 적절한 결론을 내리면 되는데, 최근 대형 과징금 사건에서 몇 번 패소했다고 공정위가 지레 겁을 먹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특히 검찰이 상소할 수 있는 법원 판결과 달리, 전원회의의 무혐의 결정은 불공정 행위에 대해 영원한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무혐의 결정 또한 충분한 견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원회의는 무죄 판결이 나도 판결문을 내는 법원과 달리 무혐의 결정이 나면 의결서를 쓰지 않는데 최소한 무혐의 의결서라도 써서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잇단 무혐의 결정을 보면 전원회의가 특정 이해집단을 지나치게 대변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무혐의 의결서 공개 등을 통해 충분한 외부 견제에 노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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