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이 다소곳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그러나 용감하게 백인 전용 버스좌석에 앉아 있는 사진은 미국 흑인인권 운동사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1일 그 사진 속 주인공 로사 파크스가 역사적인‘버스 보이콧’을 촉발한 지 60주년이 됐다. 이를 계기로 워싱턴포스트는 “파크스는 결코 우연히 그 좌석에 앉아 흑인 운동의 불씨를 지핀 인물이 아니라, 평생 흑인의 불평등에 저항했던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인 재봉사로 일하던 파크스 여사는 1955년 12월 1일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기사의 요구를 거부해 경찰에 체포됐다. 그 이후 흑인을 차별하는 버스를 타지 말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버스 보이콧’ 운동이 시작됐고 이 사건을 시작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합세해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시작됐다.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정책이 만연했던 당시, 파크스 여사는 ‘우연히’ 흑인 차별을 철폐하는데 일조한 여성으로 치부됐다. 20달러 지폐 후보에 올랐던 만큼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2005년 그가 사망했을 때도 부고에는 ‘조용히’ 살다간 ‘흑인 재봉사’라는 설명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인권 운동가는 은퇴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길 만큼 일생을 흑인 인권 운동가로 살아온 인물이다. 올해 2월 파크스 여사의 자필 편지와 일기, 연설대본 등 개인 서류들이 공개되면서 파크스 여사가 꾸준히 흑인 인권에 힘써왔다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 대학 역사교수 진 테오헤리스는 “개인 서류 공개가 사후에도 오랜 기간 미뤄진 것은 문서 공개로 그의 저항적 면모가 알려지면 살던 집의 판매가격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유족들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공개된 서류에는 그녀가 특히 흑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 근절에 힘써왔다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본인의 어린 시절 흑인 상사가 이웃 백인에게 그녀를 성폭행해도 좋다고 ‘허락’했던 내용이 담긴 일기에는 “당신들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하려면 우선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내 몸에 손을 대려거든 먼저 죽여보라”라고 소리쳤던 일화가 담겨있다. 성인이 된 후 조앤 리틀이라는 20살 여자 죄수가 자신을 성폭행한 백인 관리인을 죽인 사건이 일어나자, 위원회를 꾸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의 살인이 성폭행의 정당방위라는 판결을 받도록 도운 기록도 발견됐다.
버스 보이콧 사건 이후 한동안 가족들 모두 일자리를 잃고, 끊임없이 협박 편지를 받았던 그녀는 “나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다”는 우울한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1957년부터 불평등한 현실을 알리는 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 인권운동가로 변신해 미정부 최고 명예인 대통령자유메달을 받는 등 흑인 인권 운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했다.
전영현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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