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 아델(27)이 5년여 만에 낸 정규 음반 ‘25’가 팝음악의 역사를 새로 썼다. 28일(미국 시간) 닐슨뮤직에 따르면 지난 20일 미국에서 발매된 ‘25’는 일주일 동안 338만장이 팔려 출시 첫 주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활동했던 그룹 엔싱크가 ‘노 스트링스 어태치’ 앨범으로 2000년 세운 역대 최고 기록(241만장)을 15년 만에 갈아치웠다. 닐슨이 음반 판매량 조사를 실시한 1991년 이후 최고 기록이자, 톱5 중 여가수로서도 유일하다. 그는 영국에서도 같은 기간 80만장을 팔아 치워, 1997년 그룹 오아시스가 ‘비 히어 나우’로 세운 기록(69만 6,000장)을 깼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음악시장에서 음반이 살아있던 1990~2000년의 기록을 깬 것은 대단한 폭발력이다.
스트리밍 거부, CD 구매… 아델에 응답하다
아델의 ‘25’ 열풍에는 그의 ‘반(反) 스트리밍 정책’도 큰 몫을 했다. ‘25’에 수록된 11곡은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다. 아델이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전세계 음원사이트를 통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음원 유통사의 배만 채우고 정작 곡을 만든 아티스트에겐 헐값만 쳐주는 수익 분배의 불합리함에 대한 저항이다. 한국에서도 아델의 ‘25’를 들으려면 곡당 600원씩 내고 다운로드를 받아야 한다. 12곡 전곡을 받으려면 7,200원이 든다. 그러니 차라리 CD를 사는 게 낫다고 본 음악 팬들은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주장하며 소비(스트리밍)보다 소장(다운로드 혹은 CD 구입)을 유도한 아델에게 팬들이 ‘응답’한 셈이다.
아델을 비롯해 미국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룹 메탈리카 등도 같은 이유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부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음원 유통 구조에 맞서는 창작자들의 몸부림이다.
“아델 부럽지만…” 눈치만 보는 국내 음악인들
그러나 한국 주류 음악시장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음원 수익 배분에 문제가 있다는 볼 멘 소리는 많은데 정작 스트리밍을 거부하는 주류 뮤지션은 없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정액제 이용이 일반적인 현실에서 스트리밍 이용시 가수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곡당 0.36원에 불과하며, 다운로드의 경우에는 곡당 60원 꼴이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빅뱅이나 엑소, 아이유 같은 스타가 아델 같은 방식을 쓰면 판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정작 국내에서 아델보다 힘이 센 ‘음원 강자’들이 나서지 못하는 건 이해 관계가 얽혀서다. 아이유는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을 운영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 가수라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부할 턱이 없다. 대형 가요기획사 소속인 빅뱅과 엑소의 경우 스트리밍을 거부하면 소속사인 YG와 SM의 다른 가수들에게 불똥이 튈 우려가 있다. 값싼 스트리밍 이용에 이미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반감을 갖고 불매운동 등에 나설 경우 빅뱅 등은 문제가 아니지만 다른 가수들이 타격은 입을 수 있다. 대형 가요기획사의 한 대표는 “우리나라 소비자는 가격에 특히 민감하다”며 “이 점이 두려워 스트리밍 거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가요기획사 이사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먼저 다느냐의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서로 나서주길 바라면서 눈치만 보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음원 순위에 집착하는 국내 가요계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아델 같은 모델이 나올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한국 가요제작사들은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자정에 음원을 공개하기도 하는데, 순위와 직결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누가 포기하겠나”라고 꼬집었다. 스트리밍수를 반영해 음원 순위가 나오고, 이 결과가 방송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적용되기 때문에 순위에 민감한 대형 기획사로선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쑤시개처럼 소비되기는 싫다” 래퍼의 모험
대신 ‘음원 주권’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인디신에서 일고 있다. 블락비 멤버 지코의 신곡 ‘날’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래퍼 제이통(27·본명 이정훈)은 멜론 등에 자기 곡을 유통하지 않는다. 직접 만든 사이트(http://www.ikbuckjtong.com)에서 다운로드만 가능한 음원(1,500원)과 CD(4만~5만원)를 판매한다. 제이통은 한국일보에 “내가 만든 곡의 가격을 음원사이트가 정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불합리한 수익 배분도 마음에 안 들어 직접 유통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아예 배제한 것에 대해선 “내 음악이 이쑤시개처럼 값싸고,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제이통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도 하지만 음악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한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수익도 음원사이트에 유통했을 때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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