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후년부터 국내기업 360개
OECD ‘국가별 보고서’ 제출 대상
기업 원가 정보 노출 우려
보고서 작성 행정비용도 부담
구글이나 애플 등 해외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행위를 근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른바 ‘구글세’의 도입이 국내 기업에도 적잖은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는 특히 국내 기업이 국가별로 벌어들인 수입 등 기업 정보가 전세계적으로 공유될 경우 원가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글세 도입의 딜레마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다국적기업의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프로젝트 가운데 ‘국가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업 규모를 연 매출액 7억5,000만 유로(약 9,340억원) 이상 다국적 기업으로 확정해 각 국가에 권고했다.
국가별 보고서는 다국적 기업이 최종 모(母)회사의 과세관할권에 매년 모회사와 해외 소재 자회사ㆍ계열사가 회사 소재 국가들에서 벌어들인 세전 수입과 납부한 세금 등을 양식에 따라 적어 내는 것으로, G20과 OECD회원국 등이 정보교환 협정 등을 통해 보고서 내용을 공유하게 된다. 국내 A기업이 한국 과세당국에 보고서를 내면, 우리 과세당국이 다른 나라 과세당국에 A기업의 정보를 건네는 식이다. 물론 우리 과세당국도 외국 다국적 기업의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국가별 보고서는 다국적 기업이 로열티나 컬설팅 비용 등 명목으로 상대적 저세율국 또는 조세피난처에 수익을 집중시켜 세금을 회피하는 수법을 막기 위해 마련됐는데, 한국 등 관련국 40곳은 강제 이행 의무가 있다. 기재부는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이르면 2017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적잖은 국내 기업들도 국가별 보고서 제출 의무가 생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13년 매출 1,000대 기업’ 자료를 보면 매출액이 9,340억여원을 넘는 곳은 약 360위까지 해당이 된다. 이중 해외사업을 하는 기업이라면 내후년부터 매년 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1년 내 과세당국에 국가별 보고서를 내야 한다.
기업들이 구글세는 피할 수 없는 국제 조류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보고서 기재 항목 중 외부에 공개하기 껄끄러운 정보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보고서 양식을 보면, 기업들은 각국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세전 이익(손실), 납부세액, 법정자본금, 유보이익, 종업원 수, 유형자산 정보 등을 써 내야 한다. 또 조세관할권별로 해당 법인에서 하는 주요 사업의 활동 내역도 명시해야 한다.
재계는 이런 정보를 통해 원가 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고서에 담기는 국가별 세전 수입 정보 등을 보면 한 기업이 A국가에서 원재료를 얼마에 사들여 B국가의 가공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얼마나 붙였고, 최종 판매처인 C국가에 어느 가격에 팔았는지 등이 직간접적으로 유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봉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팀장은 “세금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기업의 경쟁력은 원가에서 나오는데 보고서를 통해 관련 정보가 전세계적으로 공유가 된다고 하면 기업은 상당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매년 보고서를 만드는 데 드는 행정 비용도 기업에 부담”이라고 말했다.
각국 경제단체들로 구성된 OECD 경제산업자문기구(BIAC)나 미국, 일본의 경제단체들도 국가별 보고서가 효과에 비해 행정비용이 과도하다며 OECD나 자국 정부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내 기업이 국가별 보고서를 통해 국제적 조세 회피로 적발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관측이 많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업종은 기술개발(R&D)나 로열티 재산권이 저세율국에 있다고 주장하기가 용이해 국제적 조세 회피를 하기 편리하지만, 국내 대기업이 주로 영위하는 제조업은 어디서 물건을 만들어 어디에 팔았는지가 가시적으로 드러나 국제 조세 회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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