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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일본을 보라

입력
2015.11.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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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일본은 20세기 초로 넘어가는 메이지왕 시기의 막바지를 홍수처럼 밀려드는 서양 문물 때문에 혼란 속에 보냈다. 앞선 서양의 문물과 과학기술을 멀거니 보고 있다가는 제국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3류 국가로 뒤쳐질 수 있다고 본 일본은 그때부터 지식인, 군인, 관료, 기업인 등을 국비로 유럽과 미국에 유학 보냈다.

유학을 다녀 온 사람 중에 유명한 문호 나쓰메 소세키도 있고 시대가 좀 뒤이기는 하지만훗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침략의 도구였던 제로센 전투기를 만든 미쓰비시중공업의 호리코시 지로 같은 엔지니어도 있다. 물론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 오히려 영국 유학 시절 신경쇠약에 걸려 돌아와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많지만 대부분의 유학파들은 훗날 일본이 패권 야욕을 드러내며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하는데 기틀이 됐다.

그때 근대화로 넘어가던 일본 정부나 유학파들이 내세운 기치는 화혼양재(和魂洋才)였다. 즉 대화혼(大和魂)으로 표현하는 일본의 정신을 지키면서 서양의 문물(洋才)을 이용하자는 뜻이다. 그만큼 일본은 의복부터 음식 문화, 여성들의 자유로운 연애관까지 모든 게 달라지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컸기에 근대화를 적극 추진했다.

요즘 일본을 보면 근대화를 지향하던 메이지 시절과 흡사하다. 극심한 세계 경기 침체가 빚어내는 혼돈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넘버2에 올라선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 등이 여러 모로 되풀이 되는 역사를 떠오르게 만든다. 여기에 내수 시장에 안주해 잃어버린 10년으로 대표되는 버블 경제에 대한 반성 등이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금의 아베 정부는 지식인 관료 기술자 등을 세계로 내보내던 20세기 초반 일본 못지 않게 변화를 위해 적극 움직이고 있다. 전세계의 경기 침체를 보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주도적으로 나섰고, 올들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며 위기에 빠진 아베 노믹스의 돌파구를 뚫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TPP 가입은 중국에 대한 견제와 동시에 세계의 시장인 중국발 저성장 국면에 대한 타개책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지난 26일 정부와 재계가 만나는 관민대화를 통해 현재 32%인 법인세를 20%로 낮춰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시간당 최저 임금을 지금의 798엔에서 1,000엔으로 올리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사람들의 소득 증대를 통해 소비를 늘려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서다. 대신 일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기업들의 투자를 올해 71조엔에서 2018년 80조엔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일본은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세계 경기가 어려운 와중에서도 5년 안에 국내총생산(GDP) 600조엔이라는 아베노믹스의 목표 달성을 자신하고 있다. 물론 세계 경제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목표 달성이 2021년 이전에 힘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베 정부는 매년 3% 이상 성장하면 5년 뒤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이 추구하는 변화의 속도다. 아베 노믹스 달성은 부차적 문제다. 일본 정부는 빠르게 몰아치는 정책 변화를 통해 내년 세계 경제에 스스로 돌파구를 뚫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정부, 재계, 정치권 등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떨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변화의 속도와 움직임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반면 아직도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보면 일본과 대비돼위기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죽했으면 학계, 전직 관료, 의사, 변호사 등 지식인 1,000명이 지난 27일 ‘미증유의 경제위기 적극 대처를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내놓았다. 이대로 놓아두면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내년에 국내외 협공을 당해 미증유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성명의 골자다.

이제 정치권도 고개를 돌려 일본을 보라. 그리고 나서 한중 FTA 비준을 더 늦춰도 될 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최연진 한국일보 산업부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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