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경찰국 소속 백인 경관이 흑인 10대 용의자에게 무려 16차례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사건 현장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촉발된 흑인사회의 분노와 비탄이 대규모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이자 연말 쇼핑시즌이 본격 시작되는 ‘검은 금요일’(블랙프라이데이)인 27일, 시카고 최대 쇼핑가 미시간애비뉴에서 ‘정의를 위한 행진’으로 이름 붙은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시위에는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를 비롯한 사회운동가 및 종교 지도자, 시카고를 지역구로 하는 두 연방하원의원 바비 러시와 대니 데이비스 등 선출직 공무원, 일반 시민과 학생들로부터 시카고 교원노조 소속 교사들까지 참여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시위대 규모를 1,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예년 같으면 고급 쇼핑객들이 분주히 오갔을 미시간애비뉴에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위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1부터 16까지 숫자를 차례로 센 후 “16발의 총격”이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치며 쇼핑몰이 밀집해있는 워터타워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시카고 낮기온은 4~5℃로 비교적 쌀쌀했고 가랑비까지 내렸지만, 분노한 흑인사회의 결집을 막지는 못했다.
시위대는 시카고 강변 트리뷴타워 앞에 집결해 ‘환상의 1마일’(Magnificent Mile)이란 별칭이 붙은 미시간애비뉴 쇼핑가를 따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특별검사에 의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사건 조사와 람 이매뉴얼 시장 탄핵, 게리 맥카티 시카고 경찰청장·아니타 알바레즈 검사장 파면 등을 요구하면서 “동영상 공개와 해당 경찰관 기소까지 13개월이 소요된 이유에 대한 당국의 정직한 답변”을 요구했다.
경찰은 미시간애비뉴에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기본적으로 평화시위를 보장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일부 시위대가 유명쇼핑몰 ‘워터타워 백화점’ 진입을 시도하면서 대치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일부 시위대는 고급백화점 니먼 마커스와 메이시스, 나이키, 애플, 빅토리아 시크릿, 랄프 로렌 등 유명 매장 입구를 가로막고 쇼핑객들에게 “쇼핑을 보이코트하자”고 호소했다. 이들은 “우리는 아이를 잃었다. 우리는 당신들이 돈을 잃게 하겠다”고 외치기도 했다.
시위대 지도부는 “도시 한쪽에서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며 “경제활동에 타격을 안겨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이번 시위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시위에 참여한 교사 페이지 브라운은 “흑인 생명이 돈 이상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ABC방송은 “일부 업소는 연중 최대 대목인 이날 아예 문을 닫고 영업을 포기했다”며“해가 지면서 공식 시위 일정은 종료됐으나, 일부 시위대는 밤시간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시카고 시와 경찰은 15년 차 백인 경관 제이슨 반 다이크(37)가 지난해 10월 흑인 10대 절도 용의자 라쿠안 맥도널드(17)에게 15초간 16발의 총을 쏴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지난 24일 공개했다. 동영상 공개는 법원 명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뤄졌으며, 검찰은 동영상 공개를 불과 수시간 앞두고 서둘러 반 다이크를 기소했다.
동영상 공개 직후부터 경찰청과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 항의 시위가 벌어졌으나 지역사회 운동가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폭력으로 대응하지 말고, 정의를 촉구하는 단합된 힘을 보여주자”며 블랙프라이데이 평화시위를 계획하면서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트리뷴은 잭슨 목사가 지난 25일 이 지역 선출직 공무원, 지역사회 및 노동계 대표, 청년 사회운동가 등과 만나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한편, 미시간애비뉴 소매업체 연합은 전날 성명을 통해 “사회 정의를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다만 평화 시위를 유지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이날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으나 경찰에 연행된 인원은 단 4명에 불과하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l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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