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이럴 수 있는 거야?’
이럴 수 있는 거야?
페터 쉐소우 지음
비룡소ㆍ 44쪽ㆍ8,000원
도처에 죽음이 만연하다. 가로수 아래 단풍 낙엽의 흥건한 붉은 빛에 소스라치며 일상을 난도질한 테러의 은유라고, 라디오에서 호명하는 숫자란 숫자들이 죄다 새로운 테러 사상자 통계라고, 화들짝 놀라고 또 놀란다. 귓속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난다고, 온갖 부고가 해일처럼 밀려든다고, 써보기도 한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소리 없이 웩웩거리는 형국이다. 신경증을 의심해봐야 할까.
꼬마 하나가 꼭 그렇게 악을 쓴다. 평화로운 공원에 발을 질질 끌며 등장해서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이럴 수 있는 거야??!” 소리친다. 눈썹을 치켜 올린 채 골을 내며 잠잠히 걷다가 또다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땅에 대고도 소리친다. 낯선 산책자들에게도 소리친다. “이럴 수 있는 거야??!”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바비큐 화덕 가에 옹기종기 둘러앉거나, 홀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개와 함께 산책하거나, 둘씩 어울려 인공호수에서 보트를 타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공원 행락객들은 아이를 가까이에서 또 멀리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꼬마가 빚어내는 작은 소동을 잠깐 불편해 하거나 궁금해 한다. 방음벽 저편에 있는 듯 철저히 무관심을 견지하는 이들이 더 많다.
몹시 궁금해 하며 아이 뒤를 쫓는 무리가 있다. 커다란 아이와 쬐그만 어른, 땅의 요정과 하늘의 요정, 곰돌이와 개…. 기묘한 조합의 이들은 아이가 소리칠 때마다 깜짝 놀라 멈췄다간 다시 쫓고, 멈췄다간 다시 쫓는다. 그러다 아이가 나비와 맞선 채 주먹질을 해대는 국면을 붙든 채 용기를 내어 묻는다. “너, 왜 그러니?”
“엘비스가 죽었어!”라고, 기다렸다는 듯 외치는 아이. ‘기묘한 친구’들은 놀란 얼굴로 얼른 공감을 표한다. 불쌍하다고, 노래도 춤도 정말 뛰어났던 가수라고. 아이가 또 소리친다. “가수 엘비스가 아니야!” 그러면서 여지껏 끌고 다니던 빨간 가죽가방을 열어 보인다. 엉엉 울면서, “내 엘비스라니까!”라고 소리치면서.
천근만근인 듯 질질 끌고 다니던 그 빨간 가죽가방 속에는 죽어서도 연둣빛인 새 하나가, 어쩔 줄 모르게 놀랍고 두렵고 기막힌 아이의 마음처럼 축 늘어져 있다.
‘기묘한 친구들’은 엘비스를 묻어주기로 뜻을 모으고, 빨간 가방을 껴안은 아이를 앞세워 자못 진지하고도 정성스런 장례를 치른다. 의식의 끝은 함께 과자와 코코아를 나누어 먹으며 엘비스가 얼마나 근사하고 다정한 존재였는지를 회고하는 아이에게 귀 기울이기. 그렇게 모두는 엘비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며 눈물까지 나눈 다음 헤어진다. 훌훌 털고 난 빈 손을 흔들며 작별하는 친구들 뒤편으로 ‘여기 엘비스 잠들다’라고 새겨진 비석과 꽃다발, 그리고 못다 묻힌 채 비어져 나온 빨간 가방 손잡이가 선명하다. 그 위에 얹힌 마지막 문장 ‘정말 좋았어요’도 정말 좋다.
만화풍 컴퓨터그래픽 그림과 죽음 가운데서도 가장 가벼울 듯한 새의 죽음으로 생의 가장 무거운 국면을 토로하며 상실의 슬픔과 노여움의 치유를 그려낸 이 그림책은 시와 철학의 나라 독일 아동문학상 수상작(2006년)이다. 모쪼록 생명을 뚜렷이 자각하며, 더불어 명랑하게 일하고, 순간순간 참다운 시간을 나누다가 품격 있게 헤어지는, 단 한 번의 삶이 우리 모두에게 가능하기를!
이상희ㆍ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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