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11마리, 2㎞ 헤엄쳐 부산 아파트 단지 출현
“멧돼지가 헤엄을 얼마나 잘 치는데요.” 남기원(48ㆍ엽사)씨의 확신에 찬 한 마디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강아지도 아니고 산에 사는 멧돼지라니…. 게다가 멧돼지 일가족 11마리가 집단으로 2㎞ 가량 바다를 헤엄쳐 건넜답니다. 부산 강서구 신호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상륙한 멧돼지 11마리로 인해 주민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멧돼지 일가족이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것은 지난 26일 오후 7시쯤이었습니다. 119 소방서는 “멧돼지가 나타났어요!”라는 주민의 다급한 신고를 받고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파악된 멧돼지는 모두 10마리.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엽사 남기원(48)씨와 주영호(37)씨가 총을 들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총을 들지 않은 사냥 동호회 회원 7~8명과 해피(3)를 포함한 사냥개 5마리가 함께 했습니다.
멧돼지는 흥분하면 주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대상을 들이받는데다가 무리를 지으면 더 난폭해지기 때문에 인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남씨는 멧돼지의 난폭성을 몸소 체험한 터라 멧돼지 대처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2011년 12월쯤 엽사로 나선 남씨를 멧돼지가 들이받은 거죠. 남씨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요”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파악된 멧돼지는 다 자란 멧돼지 4마리와 새끼 6마리였습니다. 모계사회인 멧돼지는 할머니가 앞장서면 엄마와 새끼가 따라다닙니다. 다 자란 멧돼지가 3~4살이었고, 새끼들은 1~2살 가량이었습니다. 3~4살짜리 멧돼지는 모두 암컷이었죠. 새끼라고 하지만 몸무게는 위협적입니다. 새끼가 65~70㎏에 달했고, 다 자란 멧돼지는 180㎏에 육박했습니다.
남씨 일행이 아파트 단지로 출동했을 때 멧돼지 일가족은 이미 바다를 헤엄쳐 건너편 매립지로 향한 뒤였습니다. 어렵사리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후 7시 30분.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 자란 멧돼지 한 마리가 남씨의 차로 돌진해왔습니다. 남씨는 창문을 열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불과 3m 앞이었죠. 그렇게 20여분 만에 3마리의 멧돼지가 잡혔습니다.
쉽게 잡힐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후 1시간 동안 멧돼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남씨는 “매립장이 19만여㎡(6만여평)에 정도인데다가 곳곳에 갈대밭이 있었고 컨테이너도 10여개나 있는데다 어둡기까지 해 애를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냥개 해피의 활약은 그때부터였습니다. 해피는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이날 오후 8시 30분 멧돼지 2마리 포획을 시작해 오후 11시 30분 10마리째 멧돼지를 잡을 때까지 항상 선봉에 섰습니다. 그레이하운드와 라이카 등이 조상인 해피는 그들의 장점만을 이어받았습니다. 남씨는 “그레이 하운드의 주력(달리기)과 라이카의 사냥감에 대한 집중력이 해피의 혈통에 녹아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남씨와 해피가 함께 사냥한 횟수만 100여차례나 됩니다.
10마리째 멧돼지를 잡은 것은 이날 오후 11시 30분쯤이었습니다. 폐쇄회로(CC)TV로 사전에 파악된 10마리가 모두 잡힌 겁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해피가 마구 짓어댔습니다. 11번째 멧돼지가 있었던 거죠. CCTV상으로는 잘 안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장 4시간여만에 멧돼지 포획작전이 마무리됐습니다. 현장에 있던 소방서와 경찰, 엽사들은 인명사고가 없었던 점에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