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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 태도의 과학

입력
2015.1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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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과학에서 비롯되는 우아함이란 사치스러운 덧셈의 미학이 아닌 거절과 절제에 기반한 뺄셈의 미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태도의 과학에서 비롯되는 우아함이란 사치스러운 덧셈의 미학이 아닌 거절과 절제에 기반한 뺄셈의 미학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백화점을 지나다 모 해외 패션브랜드의 카피를 봤다. ‘Elegance is attitude’(우아함은 태도다)라는 문구였다. 우리는 ‘우아하다’란 형용사를 기품이 있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쓴다. 그런데 태도라니, 여기엔 무슨 뜻이 담겨있는 걸까? 엘레강스란 단어의 라틴어원은 엘리제레(Eligere)다. 이 단어는 심혈을 기울여서 선택한다는 뜻의 동사다. 삶 속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군더더기를 다 버리고, 핵심만을 가져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우아함이란 행여 도움이 될까 전전 긍긍하며 쟁여둔 정신적 가치와 사물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다. 비움으로써 정신의 골격만을 남기는 태도. 그것이 엘레강스다. 결국 우아함이란 외면의 모습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아니라 내적 자질인 셈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궁정에서는 우아함의 새로운 차원이 발명된다. 궁정에서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경합하는 이들은, 서로를 향해 ‘Je ne sais quoi’(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멋지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이 말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신에겐 다른 사람에게 없는 섬세한 차이가 있다’란 뜻이다. 궁정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유행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한 이들 사이엔 사실 외양상의 변별성이 없었다. 언어의 정확성, 발걸음의 우아함, 교양의 수준에 이르는 작은 내적 자질들이 인간을 구별하는 지표로서 등장하게 된 건 필연이었다. 이때부터 우아함은 태도의 과학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미세한 뉘앙스, 차별화를 얻어내기 위한 패션의 스타일링 전략은 오늘날의 프렌치 시크를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는 패션 잡지 ‘라 모드’의 청탁을 받아 ‘우아하게 사는 법’이란 에세이를 연재한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1830년대는 부르주아지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사회의 신생계급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 귀족들에 맞서 옷차림과 라이프스타일의 방식을 개발, 사회 내의 입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런 사회전반의 열망은 각종 패션 스타일링 관련 매뉴얼의 발간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장갑을 우아하게 끼는 법, 넥타이 매는 법, 남자들이 나들이할 때 반드시 지녀야 하는 소품, 등과 같은 식의 글들이 신문에 나오기 시작했다.

발자크가 말하는 우아한 삶의 조건은 아름답고 좋은 것을 고르게 정의할 수 있는 감각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말과 생각, 사람의 감성을 추측할 수 있는 섬세한 직감이 습관처럼 몸에 박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름답고 좋은 것’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옷차림은 결국 사회적 산물이며 옷차림에 무관심한 것은 도덕적 자살이란 극언을 퍼붓기도 했다. 옷차림의 보편적 원칙을 설명해 놓은 부분을 읽다 보면, 마치 현대의 패션교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령 이런 구절이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당신을 주의 깊게 본다면 당신을 옷을 잘 차려입은 것이 아니다. 너무 잘 차려입었거나, 너무 부자연스럽거나 지나치게 멋을 부린 것이다.”

이 어록을 읽다 보면 코코 샤넬의 “우아함은 거절이다”라든가 디올의 "우아함이란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남과의 차별을 이뤄내는 것, 이것을 벗어난 우아함은 없다. 기껏해야 허세일 뿐”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마치 서로의 말을 베낀 것처럼 내용도 비슷하다. 그만큼 옷차림에 대한 보편적인 원칙이며 프렌치 시크의 핵심이란 뜻일 것이다.

멋을 내는 문제는 항상 나 자신의 몸에 유약을 바르듯 모든 것을 두드러지게 하고 싶은 욕망과의 싸움이다. 그러니 샤넬의 “우아함은 거절이다’란 말은 인간의 핵심을 찌르는 말인 셈이다. 옷차림이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옷에서 불필요한 장식이 사라지면 비례, 라인, 맞음새 같은 미묘한 요소들이 두드러지게 된다. 목선과 쇄골을 어떻게 연결할지와 같이, 내 몸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찾아내야 하고 전체의 조화를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아함이란 말은 그저 외양의 묘사에 사용되는 말이 아니라, 사회가 조화롭게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리라.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품어보는 것이다.

김홍기ㆍ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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