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파라오 투탕카문(Tutankhamun 투탕카멘)의 무덤이 1922년 11월 26일 열렸다. 도굴ㆍ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발굴된 사실상 첫 이집트 고대 왕가의 무덤이었다. 투탕카문의 황금 마스크(사진)를 비롯한 수천 점의 유물이 나왔다. 학계는 전설을 확인하느라 분주했고, 세상은 새로운 전설을 만드느라 분주해졌다.
알려진 바 투탕카문은 다신교의 이집트를 태양신 ‘아톤’을 숭배하는 유일신교의 나라로 개혁하려던 군주 아크나톤의 아들로 10살에 파라오가 돼 ‘소년 왕’으로도 불린다. 재위 기간 중 카르나크와 룩소르 등지에서 진행된 신전 작업은 그의 나이로 보건대 섭정에 의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무덤에 사냥ㆍ전쟁을 지휘하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지만 학계는 미라 분석 결과 그가 오른쪽 다리 골 질환과 왼쪽 다리 선천성 내반족을 앓아 걷기도 힘들었고, 선천성 구개열도 있어 언어 장애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왕가의 오랜 전통인 근친혼과 무관하지 않은 장애였다. 투탕카문 역시 친 누나(안케센파이텐)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는 재위 9년째인 18세에 말라리아의 일종인 열대열원충에 감염돼 숨졌다.
그러니까, 그가 고대 이집트의 ‘얼굴’이 된 것은 업적 덕이 아니라 무덤 덕이었다. 그의 무덤을 발견해서 처음 연 것은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1874~1939)였다. 카터는 1907년 한 영국 귀족(Lord Carnarvon)의 지원을 받아 발굴단을 이끌고 남부 룩소르(옛 지명 테베)의 ‘왕가의 계곡’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아무 성과가 없었고,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발굴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실망한 귀족은 그에게 마지막 한 계절만 지원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게 1922년이었다.
구체적인 발견 과정은 알려진 바 없다. 어쨌건 그는 그 해 11월 4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고, 낭보를 듣고 달려온 귀족(과 그의 딸)과 함께 26일 문을 열었다. 뭐가 보이느냐는 귀족의 질문에 그 역시 아무 것도 안 보였지만 “Yes, Wonderful things!”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전실이 열린 것은 이듬해 2월 16일이었고, 석관이 있던 묘실은 또 한참 뒤에 열렸다. 하지만 카터의 말은 정확했다. 그는 64세이던 39년 3월 악성림프종으로 숨졌고, 호사가들은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을 만들었다.
지난 9월 영국 고고학자 니콜라스 리브스가 투탕카문 묘실의 북쪽과 서쪽 벽 뒤에 2개의 비밀 문이 있으며 그 문들이 이집트 전설의 미녀이자 아크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의 무덤으로 통하는 입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리브스는 이집트 유물부와 함께 11월 말 본격적인 레이저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후속 보도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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