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이 가히 아이돌급이다. 인터뷰 당일 오후에만 음악회 기획회의와 인터뷰 등 일정이 6건이다. 이달 초에는 파리, 지난 주말에는 일본을 다녀왔다.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제자 조성진을 해외 거장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서다. 시간을 쪼개 28일에는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토크 앤 콘서트’도 연다.
18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학장은 쑥스러운 듯 연신 “원래 이렇게 바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7년 전 서울대 퇴임하고 나서 맡게 된 잔심부름이 많아 괜히 바빠 보여요. 이런 저런 음악제, 음악회 끝나고 11월쯤 시간이 될 것 같아 콘서트를 열기로 했는데 10월에 성진이가 우승하면서…. 하하.”
신 교수는 21일 일본 도쿄 NHK홀에서 열린 쇼팽콩쿠르 우승자 음악회에 참석해 일본 피아니스트 나카무라 히로코와 조성진의 연주를 들었다. 나카무라는 1965년 쇼팽콩쿠르 4위에 입상하고 심사위원도 다섯 차례나 역임한 일본 피아노계의 대모. 몇 년 전 신 교수의 소개로 조성진을 만난 후 팬이 된 그는 조성진이 일본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는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쇼팽콩쿠르 이후 ‘조성진의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그녀가 1956년 14살에 데뷔해 26살인 1969년 서울대 음대교수가 됐을 당시 인기는 오늘날 아이유 못지않았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세대에요. 국내 콩쿠르가 처음 만들어질 때 출전해 여러 번 우승했으니 연주 기회를 많이 얻었죠. 서울대 졸업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갔는데, 당시에 그런 이력의 연주자도 드물었고요. ”
어릴 때부터 가르쳐 듣고 보고 배우는 인풋(in-put)보다 가진 재능을 쓰는 아웃풋(out-put)이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가르쳤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고1 때 서울로 유학 와 가정교사를 했거든요. 가르치면서 제가 배우는 것도 많아요. 인풋 아웃풋이 상호작용하는 거죠.”
그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시절이 되며 ‘선생님이 하느님인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다. 재능과 집념만 있다면 훌륭한 연주자로 올라설 기회가 많아진 반면, 경쟁은 치열해졌다. 신 전 교수는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연주자로 데뷔한 후에는 성장하며 배우는 과정이 확연히 줄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연주회를 보여야 된다는 집착에 너무 연습하다가 손에 무리가 와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28일 ‘토크 앤 콘서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1920~30년대 한국 클래식음악 1세대인 신재덕(1917~1987)부터 유럽 유학파가 생긴 1960~70년대, 조성진 손열음 등 국내 피아니스트들이 해외 클래식무대를 휩쓰는 현재까지 신 전 교수가 직접 보고 겪은 100년의 한국 클래식음악사를 소개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바리톤 박흥우, 피아니스트 이경숙 등과 함께 평소 가장 즐겨 연주한 음악들도 들려준다. 모차르트의 뒤포르 미뉴에트에 의한 9개의 변주곡 K.573와 바이올린 소타나 F장조 KV376, 슈베르트의 네 개의 즉흥곡,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 가곡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 등이다.
“우리나라 음악계가 어떤 길을 걸어왔나, 이건 노인의 눈에만 보이는 거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과 함께 소개해 드릴게요. 이제 막 콩쿠르에 입상하기 시작한 친구들도 함께 합니다. ‘미래의 조성진’이 누굴지 함께 지켜봐 주세요.” (02)580-130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 (성신여대 국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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