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M&A 시대/ 상)메가 딜 시대 열렸다
지난 23일 글로벌 제약업계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빅 딜이 일어났다. 비아그라를 생산하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보톡스 제조사인 아일랜드의 앨러간을 인수합병(M&A)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화이자의 인수 금액은 무려 1,500억달러(약 173조원). 헬스케어 부문 역대 최대 규모의 M&A이면서 초대형 인수합병이 봇물을 이룬 올해 성사된 M&A 중 최대 규모다.
올해 M&A, 사상 최대 기록
합쳐진 새 회사 ‘화이자간(Pfizergan)’은 시가총액이 3,300억달러(약 382조원), 연 매출 650억달러(약 75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됐다. 합병 이후 화이자는 법인세율이 미국(25%)보다 훨씬 낮은 아일랜드(20%) 더블린으로 본사를 옮길 전망이어서 ‘조세회피형’ M&A 논란이 일고 있지만 새 회사는 존슨앤존슨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제약사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비아그라 등의 특허만료로 매출 하락을 우려했던 화이자가 ‘메가 딜’로 새 성장 동력을 찾은 셈이다. 1990년대 세계 14위에 불과했던 화이자가 2000년대 비약적으로 성장한 비결은 공격적 M&A다. 2000년 워너 램버트(약 100조원), 2002년 파마시아(약 69조원), 2009년 와이어스(78조원)를 잇따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고 결국 글로벌 ‘넘버 1’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의 초대형 인수합병이 잇따르면서 올해 M&A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성장 한계에 부딪혀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25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 초까지 성사된 글로벌 M&A 규모는 4조600억달러(약 4,692조원)로 역대 최대였던 2007년 3조9,300억달러(4,542조원)를 넘어섰다.
글로벌 M&A는 막대한 인수자금이 필요하고 해당 기업의 부실까지 떠안아야 하며 이질적 기업 문화에 따른 부작용,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M&A는 인수 대상인 기업의 인력과 기술력, 각종 경영기법과 시장 경쟁력을 단번에 흡수해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는 그만큼 시간과 투자 비용의 절약으로 이어진다.
신시장 개척ㆍ기존 시장 확대 위해 M&A 적극 활용
해외 기업들은 이를 시장 확보 차원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세계 1,2위를 달리는 업체들은 글로벌 M&A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 늘리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글로벌 맥주업계와 호텔업계다. 이달 초 세계 1위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와 2위 사브밀러가 합병을 마무리하면서 세계 맥주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했다.
벨기에에 본사가 있는 AB인베브는 버드와이저, 스텔라, 코로나, 호가든, 레페 등의 유명 브랜드를 소유한 업체로 국내 오비 맥주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AB인베브가 밀러, 페로나 등을 생산하는 사브밀러를 1,080억달러(약 125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인수한 것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맥주 수요 지역인 유럽과 북미의 소비는 정체됐지만 남미와 아프리카는 여전히 맥주 수요가 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사브밀러는 아프리카에서만 40여개 맥주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자체 생산량의 12%를 아프리카에서, 39%를 남미에서 판매하고 있다. 또 세계 시장 점유율 20.8%인 AB인베브와 9.7%인 사브밀러의 합병으로 새 회사는 전 세계 맥주 3병 중 1병을 생산하게 돼 3위였던 하이네켄(9.1%)과 4위 칼스버그(6.1%)와 격차를 압도적으로 벌렸다.
지난 17일 단행된 대형 M&A는 세계 호텔업계 순위를 바꿨다. 힐튼호텔에 이어 업계 2위였던 메리어트가 122억달러(약 14조3,000억원)에 스타우드 호텔&리조트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웨스틴, 더 W, 쉐라톤, 세인트 레지스 등 호텔 브랜드를 보유한 스타우드 호텔&리조트는 전세계적으로 35만개 객실을 갖고 있다. 이를 73만1,000실의 메리어트가 인수하면서 호텔 5,500개, 객실 110만개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이 탄생했다. 기존 1위였던 힐튼(73만5,000실)과 격차도 30만실 이상으로 벌어진다.
이밖에 석유 메이저 로열 더치 셸이 유가하락에 맞서 몸집을 불리기 위해 영국의 브리티시가스(BG) 그룹을 815억달러(약 93조원)에 인수했고 미국 컴퓨터 제조업체 델은 670억달러(약 76조원)를 들여 세계 최대 데이터 저장기업 EMC를 인수했다. 올해 3월 성사된 미국 식품업체 하인즈와 크래프트푸드의 합병도 626억달러(71조원) 규모의 메가 딜이다.
일부에서는 2007년에도 대규모 M&A가 성사된 뒤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었던 사례를 거론하며 최근의 M&A 시장 과열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HSBC의 투자전략가 피터 설리번은 “다양한 업종에 M&A가 분산돼 있어 과열의 기미는 없다”고 주장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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