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1월 25일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The Mousetrap)’이 1952년 오늘(11월 25일) 영국 런던 앰배서더 극장에서 대장정 첫 공연의 막을 올렸다. 앞서 10월 6일 노팅엄 로열극장에서 한 번 초연됐지만, 본격 장기공연은 앰배서더 정기 공연이 시작된 날을 기점으로 삼는다. 이후 ‘쥐덫’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단 한 회도 거르지 않았고, 58년 4월 12일 영국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뒤로도 지금까지 기록 경신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74년 3월 25일 공연 장소를 지금의 세인트 마틴 극장(St Martin’s Theatre)으로 옮겼다.
지난 2012년 11월 25일 6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극장 측은 “초연 이후 배우 403명(회당 출연자 8명)이 거쳐갔고, 124마일의 의상을 다림질했고 426톤의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 밝혔다. 배우 데이비드 레이븐(David Raven)은 ‘메트칼프’ 역으로 총 4,575회를 출연, 단일 배역 최다 출연 기네스북에 올랐다.
1947년 BBC 라디오가 메리 여왕에게 80회 생일 선물로 누구 작품을 원하느냐 묻자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답했고, 작가가 1주일 만에 쓴 30분짜리 단막극 대본이 ‘세 마리 눈 먼 생쥐(Three Blind Mice)’였다. 50년 단편소설로 개작해 ‘쥐덫’이 됐고, 이듬해 희곡으로 또 한 번 고쳐 연극 공연이 시작됐다. 1943~53년 사이 희곡 6편을 쓴 크리스티는 한 해 먼저 쓴 ‘할로우 저택의 비극 The Hollow(51년)’이나 한 해 뒤의 ‘검찰 측 증인 Witness for the Prosecution’에 비해 ‘쥐덫’은 범작이라 잘 해야 8개월 정도 공연되리라 여겼다고 한다(2011.12.28 텔레그래프).
‘쥐덫’의 롱런에는 탁월한 프로듀서 피터 손더스(Peter Saunders)의 기획 공도 컸다. 그는 58년 기록 경신 때 왕실과 문화계, 정ㆍ재계 명사들을 대거 초청해 ‘쥐덫’을 문화 상품이 아닌 영국적 문화 상징으로 치장하는 데 공을 들였고, 은둔하던 크리스티에게도 특별한 공연 때는 잠시라도 참석해 그 자체로 화제가 되도록 했다. 92년 40주년 행사에서 존 메이저 당시 총리는 “영국이 어떤 나라인지, 영국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 연극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위키피디아가 연극의 결말을 공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쥐덫’의 저작권을 상속 받은 손자 매튜 프리차드는 “할머니는 책이나 연극 플롯이 리뷰에서 밝혀진다면 불쾌해할 것”이라며 내용 수정을 요구했고, ‘위키’ 측은 “우리 목적은 중요한 지식을 수집해 알리는 것”이라며 “유족의 요구는 도서관 서가에서 ‘쥐덫’을 치워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반박했다. 지금도 범인은 ‘위키’에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