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외교사절에 “우쨌든 케네디 아이가”
사방의 인재를 등용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포용의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그를 보필한 참모와 후배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YS는 ‘노(No)’를 허용했고, 뒤끝은 없었으며, 파격을 즐긴 지도자였다. 정도(正道)를 위해서라면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는 실로 ‘대도무문’의 성격이었다.
‘No’를 허용한 리더십
YS는 ‘아니오’에 귀를 열어둔 지도자였다. 최고의 자리에 오를수록 참모나 측근의 ‘예’에 익숙해지게 마련인 게 권력자의 속성인데, YS는 예외였다. 심지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개각을 두고도 YS는 주위의 의견을 경청했다.
청와대에서 공보수석겸 대변인으로 YS를 보좌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전한 일화에서는 소통하는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집무실로 당시 윤 수석을 부른 YS는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며 “개각을 하려는데 어떻노?” 라고 불쑥 제안했다고 한다. 윤 전 장관은 난감했지만 용기 내어 “죄송합니다만 저 같으면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의외의 답에 YS가 다소 역정이 난 투로 되물었다. “뭐? 뭐가 문젠데?” 이후 윤 전 장관의 의견을 들은 뒤 YS는 “그러고 보니 그런 점이 있구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때론 논쟁도 마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미 YS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도 이런 대화가 흔치 않게 오갔다고 한다. “지난 번 이 결정은 재고하셔야 합니다.”“아니야. 그건 윤 수석이 모르고 하는 소리다.”“각하께서 이 점을 모르신 겁니다.”“그럼 진실이 뭐라는 거야?”“제가 파악하기로는 이렇습니다.”“그래? 들어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윤 전 장관은 “최고 권력자가 ‘아니오’에 귀를 열어놓고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그 자리에서 수긍하고 바로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결국 수용하지 않더라도 이견을 도중에 자르는 법 없이 끝까지 들으셨다”고 회고했다.
뒤끝 없는 너그러움
YS는 뒤끝 또한 없는 인간적 매력이 있었다. 임기 3년 차이던 1995년 5월 국제 언론인협회(IPI)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당시 경복궁 경내에서 YS가 특별연설을 했을 때다. 강한 햇빛 탓에 유리판 프롬프터(자막기)에서 빛이 반사돼 YS가 연설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공보비서실에선 당일 날이 흐릴 것으로 보고 야외 연설을 준비했는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당시 YS의 통역을 담당하는 공보비서관이었던 박진 전 의원이 놀라서 공보수석실로 들어갔다. 불만족스럽게 연설을 마친 YS는 이미 윤여준 당시 공보수석을 전화로 질타하고 있었다. 박 전 의원은 “당시 YS는 프롬프터를 담당하는 영상비서관을 문책하라고 지시했으나, 윤 전 수석이 이 일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니, ‘그러면 공보수석이 알아서 하라’고 한 뒤 그걸로 끝이었다”고 떠올렸다. 공보수석이 책임을 지겠다니 더 이상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다. 박 전 의원은 “YS는 배신은 용서하지 않지만, 실수는 너그럽게 눈을 감아주는 통 큰 정치인이었다”며 “그렇기에 절로 충성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격식을 깬 소통
YS의 건강 비결이 조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에게 달리기는 ‘소통’이었다. 상도동계(YS 자택이 상도동인 데서 붙여진 가신그룹 별칭) 출신이자 YS 청와대에서 정무비서관으로 일한 이성헌 전 의원은 9년간 YS의 조깅 멤버였다. 이 전 의원은 “YS는 그냥 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사는 얘기 들었다”며 “그 중에 의미있게 들은 얘기는 꼭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참모와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YS는 매일 아침 조깅을 했다. 그러나 누구나 다 YS와 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승수 비서실장, 주치의였던 고창순 박사, 김기수 수행실장, 엄효현 정무비서관, 정병국 제2부속실장(현 새누리당 의원) 등 10여명뿐이었다. 새벽조깅팀에 합류하라는 연락을 받으면 주위에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당시 조깅팀 멤버였던 인사들은 “YS의 조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그날의 중요한 일정을 생각하고 개혁의 결의를 함께 다지는 중요한 의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YS는 외교사절에게도 파격적인 스킨십으로 단번에 ‘친구’로 만들기도 했다. YS가 대통령 재임 시절 주한 뉴질랜드 대사로 부임해온 피터 케네디 전 대사를 만났을 때였다. 통역담당 공보비서관이었던 박진 전 의원이 소개하니 대뜸 YS는 “존 에프 케네디와 어떻게 되시오?”라고 물었다. 대사의 답변을 박 전 의원은 간단히 “각하, 이름은 같은 케네디인데, 동성이본(同姓異本)이라고 합니다”라고 통역했다. 그러자 YS는 “우쨌든 케네디 아이가?” 하면서 대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고 한다. 박 전 의원은 “대사 역시 환하게 웃었고 외교단 가든파티 때에도 두 분은 자주 환담을 나눠 다른 대사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전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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