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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평형수 처리시설, 40조원 시장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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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평형수 처리시설, 40조원 시장 열린다

입력
2015.1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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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내 바닷물 국경 넘나들며

생태계 교란 등 각국 막대한 피해

한국, 기술 앞서 점유율 55%로 독주

중국 저가 공세-일본 등 기술력 틈새

“시장 1위 유지” 치열한 경쟁 예고

이르면 2017년 말부터 전 세계 대부분의 선박에 선박평형수 처리 시설이 의무화될 전망이다. 40조원에 달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한국선주협회 제공
이르면 2017년 말부터 전 세계 대부분의 선박에 선박평형수 처리 시설이 의무화될 전망이다. 40조원에 달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한국선주협회 제공

1988년 미국 오대호에서 홍합의 일종인 얼룩줄무늬담치가 발견됐다. 얼룩줄무늬담치는 원래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흑해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중생물. 외래종인 얼룩줄무늬담치는 오대호 지역에서 토종 담치류를 몰아낸 것은 물론이고, 상수원이나 공업용수 시설장치에 들러붙어 파이프를 막아버리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피해금액만 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학자들은 이곳에 얼룩줄무늬담치가 유입된 경로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 선박평형수였다.

해양 생물들이 선박의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한 선박평형수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생태계 파괴에 주범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체결 후 10년이 넘도록 방치돼 있던 평형수 처리시설 의무화 협약이 이르면 내년 말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은 새롭게 열리는 평형수 처리 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 세계 선박에 평형수 처리시설이 의무화되는 경우 그 시장 규모는 최소 40조원, 많게는 9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 새 시장을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도 벌써부터 뜨거워지는 모습이다.

선박 평형수 통한 생태계 교란, 국제사회 대책 마련 부심

선박 평형수는 선박이 화물을 내린 뒤 부력 때문에 무게중심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배 아래에 채우는 바닷물이다. 문제는 선박에 화물을 싣기 전 전체 배의 무게를 조절하기 위해 평형수를 빼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화물을 싣고 한국을 오가는 선박은 한국에서 바닷물을 넣었다가 미국에서 빼는 것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서식하는 유해성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 해양 생물 등이 평형수에 실려 미국 바다로 이동을 한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한 해에만 100억톤 이상의 바닷물이 평형수로 이동이 되고, 이를 통해 7,000종 이상의 해양생물도 함께 이동을 한다. 이 중 상당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해 죽게 되지만, 오대호의 경우처럼 생명력이 강한 담치 같은 생물은 살아 남아 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된다. 미국은 최근 외래해양생물에 의해 2050년까지 1,340억 달러의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바다의 유엔’이라는 IMO가 2004년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평형수에 들어온 생물이 살아 있는 채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선박에 처리시설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선박 정수기’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선박 평형수에 의한 해양생물 이동경로
선박 평형수에 의한 해양생물 이동경로

그러나 협약은 10년이 지나도록 발효가 되지 않고 있다. 채택 당시 IMO는 30개국 이상이 협약을 비준해야 하고, 이들 국가가 보유한 선박의 적재능력(선복량)이 전 세계 선복량의 35% 이상이 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준 충족 후 12개월 후 협약이 발효되도록 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 등 44개국이 협약을 비준해 30개국 기준은 넘었지만, 선복량은 32.8%로 발효 조건에 약간 못 미친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홍콩, 파나마 등 선박 무역 강국들이 비준을 하지 않은 탓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들 중에 한 나라만 비준해도 발효 조건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며 “이달 말 있을 IMO 총회에서 추가 비준국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망대로라면 협약 발효 시점은 12개월 뒤인 내년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협약 비준국 내 바다에서는 처리시설을 거치지 않은 평형수는 버릴 수 없게 된다. 해수부는 전 세계 5만7,000척의 선박이 새로 처리설비를 설치하게 되며, 신규 선박까지 합치면 5년 동안의 시장 규모가 총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 해양공학연구소는 시장 규모가 이보다 2배가 넘는 800억달러(93조원)에 달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 시장 절반을 선점한 한국

한국 정부는 IMO협약 발효에 가장 적극적이다. 파나마 등 해운 강대국들이 머뭇거리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들 국가들이 미적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력 부재다. 자체적으로 처리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으면 해외에서 전량 수입을 해야 하는데, 비용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보통 선박처리 시설을 하나 설치하는데, 비싼 것은 100만 달러(11억5,000만원 가량) 정도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국은 2007년 선박평형수 관리법을 제정하는 등 일찍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다. 2003년부터 국내 기업을 지원, 평형수 처리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 왔다. 협약이 발효되면 IMO가 승인한 기술을 이용한 설비만이 허용되는데, 승인된 37개의 설비 기술 중 13개(35%)를 한국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테크로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2010~2014년 누적 설비 수주액은 1조4,425억원으로, 전 세계 수주액(2조6,001억)의 55%에 달한다. 압도적인 점유율이다.

하지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이미 일본과 독일, 노르웨이 등이 맹렬하게 추격 중이다. 중국도 우리나라의 아성을 깰 가장 무서운 경쟁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는 기술을 선점하고 있지만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본격 가세했을 경우, 기술력에 대한 신뢰도에서 이들 국가를 넘어서는 것도 숙제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지금의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가격 측면에서 중국, 기술 측면에서 일본 등 선진국 틈에 끼여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김영수 박사는 “지금까지는 우리의 기술로 시장을 선점하는데 역점을 뒀다면, 이제는 정부도 기술력을 보다 높이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전략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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