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9대 왕이었던 숙종은 탁월한 정치감각의 소유자였으며 정치판의 독해에 능했던 인물이었다. 왕권강화를 위해 환국(換局)을 주도하면서 신권의 도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탁월한 정치공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남인과 서인의 교차 집권을 가능케 했던 환국정치는 숙종이 정국을 주도하고 신하들을 견제함으로써 제왕으로서의 정국 장악력과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했던 용이주도한 권력정치 그 자체였다. 환국은 문자 그대로 국면을 전환한다는 뜻이다. 정치판의 어젠다(의제)를 주체적으로 설정해 나감으로써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집권세력을 결정한다. 허수아비 임금이 아닌 독립변수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으려는 왕조시대 나름의 정치기술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는 정치의 기본 영역이 있다. 의제와 이슈의 선점을 통한 정국 주도와 외연 확장의 모색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치 판단이 배제되면 패권정치로 흐르기 십상이다. 현대정치에서 왕도정치를 모색하기는 어렵겠으나 지나친 정치공학적 현실정치에만 치우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정치의 권력추구적 속성이 정치를 추동하는 원동력이겠으나 궁극적으로 정치가 계급간의 사회적 간극을 메우고 갈등을 관리 하지 못하면 정치는 존재이유를 상실한다. 숙종의 환국정치가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소이(所以)일 것이다.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이후 교과서 문제는 다시 잠복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국정화 논란은 의정활동 자체를 마비시켰다. 정기국회 기간의 상당 기간을 뜬금없는 역사 교과서 논란으로 소진했다. 부실 예산심사의 원인을 제공한 측은 여권이다. 이후 새누리당 내의 TK 물갈이 관련 발언이 있었고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을 선택하게 해 달라’는 국민심판론이 정치권의 중심이슈로 제기되었다. 야당은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을 제기했으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2주일쯤 전에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차기 권력구조에서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실세 총리의 조합을 언급하면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언급했다. 청와대는 교감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으나 친박인사들의 잦은 개헌 관련 발언이 여러 정치적 상상력을 가능케했다. 청와대와의 암묵적 묵인하에 내년 총선 이후의 개헌론 촉발을 염두에 둔 공론화의 일환인지는 두고봐야 한다. 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론은 ‘나쁜 대통령’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감수했어야 했다.
새누리당 등 여권은 의제 설정 능력에서 야당을 압도한다. 기본적으로 여러 정책수단과 정치적 자원이 여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야당은 내분으로 정교한 정치적 프로그램에 입각한 이슈 선점에서 항상 여당에 뒤진다. 지난 대선때도 야당의 핵심 의제였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민주주의란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체제”라는 민주주의의 저명한 이론가인 아담 쉐보르스키의 말과는 반대로 우리 정치는 단기적으로는 다이내믹스의 정치로 합리화되는 불가측의 정치가 통용된다. 그러나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에서의 승부는 ‘결과의 확실성’을 담보하는 정치로 가고 있다.
여권은 총선 이후에 언제든지 정국을 주도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카드로 개헌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여당의 발빠른 국면 전환과 야당의 고착화된 무기력의 합작품이 선거가, 정치가 무언가를 바꾸지 못한다는 무력감과 패배주의로 귀결된다. 결과는 젊은 세대의 정치혐오와 낮은 투표율, 장년 세대의 보수화 경향과 높은 투표율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변화의 기제를 정치에서 찾지 못하고 다른 공간에서 모색한다. 이는 정치의 존재를 의심케 함과 동시에 정치적 기득권과 사회경제적 상층부의 친화적 동거로 이어진다.
역설적으로 야당도 적절한 국면 전환의 정치기술에 적응해야 한다. 권력정치가 정치의 현실이라면 규범적 정치학의 당위는 어쩐지 공허하다. 연령효과에 따른 보수화 경향과 장년층 인구의 상대적 증가에 따른 인구구성비의 변화, 표의 결집도 등 운동장은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 야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여권의 다음 국면 전환용 카드가 궁금해진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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