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DJ-직관의 YS, 큰 정치로 소통하고 난관 극복
지역구도ㆍ보스정치는 병폐… 소프트파워 길러야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정치는 명실상부한 ‘포스트 양김시대’를 맞았다. 민주화 투사이자 의회민주주의자이면서 직관적이고 직선적인 리더십, 본능적인 정치감각을 지녔던 YS의 유산은 후대 정치인들에게도 귀감이 될 터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로 태생된 지역 대결구도와 보스 중심의 계파정치는 포스트 양김시대에 극복해야 할 정치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삼풍 붕괴 소식에 “전화위복으로 만들 방안 궁리”
DJ가 이성의 정치인이라면 YS는 직관의 정치인이었다. 실제 YS가 지닌 정치 DNA는 본능에 가까웠다. 1995년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났던 6월 29일 오후 6시가 넘은 시각, 당시 YS 청와대에서 공보수석이자 대변인이었던 윤여준 수석을 찾는 인터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아니 어떻게 백화점이 다 무너지노? 올라와라.”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윤 전 수석은 사고의 성격과 피해 현황, 국정에 미칠 영향에 이어 정부의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묵묵히 듣던 YS가 입을 열었다. “뜻밖에 큰 일을 당했을 때는 그 일을 수습하려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걸 어떻게 전화위복으로 만들 수 있을지 궁리해라.” YS는 그런 뒤 “앞으로 윤 수석이 큰 일을 당할 때가 있으면 지금 내가 한 말을 명심해라”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고 한다.
YS의 측근들은 불통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YS의 직관에 근거한 통 큰 리더십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윤 전 수석은 “통치자로서 냉정을 넘어 냉혹함과 본능적인 직관을 지녔던 YS 리더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예”라고 말했다. “참모진은 놀래서 수습하기에도 벅찬 상황인데 그 분은 어떻게 하면 전화위복으로 만드느냐에 이미 생각이 미쳤다”는 얘기다.
참모를 정치적 동지이자 후배로 여기는 리더십도 YS가 뿜는 카리스마의 원천 중 하나였다. 윤 전 수석은 “심지어 이미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 논쟁을 거부하지 않는 분이셨다”며 “참모도 후배로 여기고 늘 기르려는 애정을 보여주셨기에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회고했다.
‘지역대결 구도’ 유물… 극복 과제
양김 시대는 우리 정치에 극복할 과제도 남겼다. 대표적인 게 지역구도와 그 부산물인 보스정치다.
당시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탄탄한 기반이 필요했다. 양김은 그 토대를 지역에서 찾았다. 경남 거제도가 고향인 YS는 영남을, 전남 하의도 출신인 DJ는 호남을 정치적 근거지로 삼았다. 지역에 의존해 다른 지역은 배척하는 대결적 지역주의는 그렇게 싹이 텄고 지금까지도 정치권의 큰 병폐로 남아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새누리당은 여전히 ‘영남당’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당’이다. 개각이나 각 정부기관의 주요 인사 때마다 특정 지역 출신이 특혜를 받는다는 의혹 역시 잦은 뉴스거리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양김 이후 지역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어젠다’를 만들지 못했다”며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의 유혹에 빠지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1인 중심의 보스정치는 민주화라는 공동체 공동의 목표가 뚜렷했던 80년대에나 의미가 있었고 가능했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현대는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다”며 “민주화의 공고화를 위해선 양김시대 리더십에 연연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지율이 높은 특정권력자를 중심으로 모여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생존형 계파’ 수준이 돼선 정치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YS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 전 수석은 “내가 어른께 배운 건 민주주의는 타협의 정치지만, 타협을 한다는 이유로 국민이라는 원칙과 명분을 버리는 건 야합이라는 점”이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지금의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라고 꼬집었다.
“화합ㆍ통합 YS 유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과제”
YS가 민주주의 사도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반영하는 측면도 크다. 대다수 정치평론가들은 “독재에 항거해 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YS도 정치 영역에서는 타협과 대화, 소통의 방식을 자주 이용했다”며 “지금이 민주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수호자로서의 YS가치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YS가 유지로 ‘화합과 통합’을 남겼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정희 교수는 “YS가 끝내 이루지 못한 과제를 유지로 전한 게 아닌가 싶다”며 “민주화ㆍ산업화 세력간, 지역간, 세대간 화합과 통합 그리고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DJ와의 화해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물론 평생을 의회민주주의자로 살았던 YS도 청와대로 들어간 뒤 임기 말엔 ‘노동법 날치기’라는 과오를 남겼다. 당시 청와대가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의원들을 새벽 4시 서울의 모처에 소집시킨 뒤 버스로 국회 본회의장으로 실어 날라 군사작전하듯 노동법을 처리한 건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부끄러운 과거로 거론된다.
때문에 청와대가 집권 여당을 국정운영을 위한 거수기쯤으로 여기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의회민주주의는 양김시대를 극복하기는커녕 더 후퇴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원종 전 수석은 “임기 말 불가피하게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하긴 했으나, 대통령 임기 내내 청와대가 야당을 상대로 비난을 한 적은 없었다”며 “여야 정당끼리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어르신의 큰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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