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중ㆍ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구성을 마쳤다고 밝혔다. 국편 발표에 따르면 집필진 공모에 교수와 연구원, 현장교사 등 56명이 응모해 이 중 중학교 26명, 고교 21명 등 모두 47명을 집필진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개하겠다던 명단은 물론이고 공모와 초빙 비율, 교수ㆍ국책연구원ㆍ교사 수, 시대별 전공자수 등 세부 내용은 일체 밝히지 않았다. ‘깜깜이 교과서’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게 됐다.
국정교과서 집필진의 정상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예견됐던 바다. 대다수 대학의 역사전공 교수들은 물론이고 이들이 속한 거의 모든 학회가 집필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니 궁여지책으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은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교과서 서술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을 집필진에 포함한 것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에 몰렸다는 뜻이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진 신상을 비공개로 하는 것을 “편안하게 집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대표집필진에 선정됐다 낙마한 최몽령 서울대 명예교수를 염두에 둔 듯 하나, 그 경우는 본인의 도덕성 문제 때문이어서 명단 미공개 사유와 연결 짓는 건 적절치 않다. 최악의 경우 공개된 명단에 비판이 쏠린다 해도 그것이 공개 불가의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밀실에서 교과서를 편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명색이 자기 나라 역사를 새로 쓰겠다면서 이름을 숨기겠다는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다.
이러니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역사학계와 교육계 전반에서 수준 이하의 국정 교과서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국정화의 성공 여부는 오직 얼마나 좋은 품질의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필부터 발행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해 국민이 직접 검증한, 국민이 만든 교과서를 개발하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떤 수준의 사람들이 만드는 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정화 방침 발표 이후 정부의 행태를 보면 당당하게 내세운 명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옹색하다. 최고 필진을 구성하겠다는 공언은 진작에 물 건너갔고, 집필진 구성현황과 명단공개도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국편 내부에서도 집필진 관련 사항은 철저한 보안사항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어떻게 신뢰를 얻을 건지 답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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