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울 대역전 경주대회(경부역전마라톤)를 ‘추억’하십니까.
1955년 11월 14일 첫 출발 총성을 울린 경부역전마라톤이 61회째인 올해부터 한반도 통일 대역전 경주대회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태어났다. 올해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지난 17일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 힘찬 발걸음을 뗐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이어 달리자는 의미에서 출발지를 제주로 연장한 것. 하지만 21일 경기 파주시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인 군내초등학교에서 미완의 국토종단 레이스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비록 통일의 염원을 안고 제주를 출발한 12개 시ㆍ도 대표 200여명의 철각들이 북녘을 향해 첫 발을 떼지도 못한 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발걸음을 돌렸지만, 새누리당 사무총장 황진하 의원이 폐막식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3성 장군 출신인 황 의원은 “한반도 통일 대역전 경주대회가 눈앞 개성공단을 지나 평양, 신의주까지 달려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힘을 실었다. 육상계에서도 한반도 통일 대역전 대회를 ‘한국 육상의 문화재’라고 입을 모은다. 통일을 지향하는 대회 취지가 숱한 난관을 뚫고 변함없이 이어져 환갑을 넘는 연륜을 쌓았기 때문이다. 원로 육상인들이 너나 없이 폐막식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하는 이유다.
실제 도(道)단위 역전마라톤대회는 여럿 있지만 국토를 종단하는 대회는 한반도 통일 대역전 경주대회가 유일하다. 그런 점에서 대회를 구상하고 실행해 온 한국일보의 저력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1955년 11월은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불과 2년여. 국토를 관통하는 제대로 된 도로망이 있을 리 없었고, 선수단 구성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일보와 육상경기연맹은 보란 듯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500여km를 릴레이로 달리는 역전경주대회를 설계하고 안착시켰다. 초창기에는 군부대에서 선수단 이동을 위해 트럭을 지원하는 등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육상인들의 회고와 논두렁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경부역전마라톤을 기록한 당시 신문을 보면 경외감이 들 정도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주인을 찾은 양,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닐는지….
역전경주대회가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25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아산 정주영 회장의 어록과 오버랩 된다.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을 상징하는 말은 “이봐, 해봤어?”다. 이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업인 어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소개되는 아산의 회고록을 보면 “시대를 뛰어넘는 발상력과 상식을 뛰어넘는 직관력으로 한국 경제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아산은 또 “어떤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있는 길도 안 보이지만, 된다고 생각하면 없는 길도 보인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요즘 표현을 빌자면, ‘창조경제’의 원조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산과 관련된 일화는 부지기수다. 거북선이 새겨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초대형 유조선을 수주한 일, 한 겨울에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잔디를 입히는 일을 의뢰 받아 푸른 보리를 떠와 입힌 일, 여의도 면적 20배에 가까운 서산 간척지 막바지 공사 때 유속이 너무 심해 아무리 돌덩이를 쏟아 부어도 물살에 휩쓸려가자 폐 유조선을 가져와 유속을 줄이고 물막이 공사를 완성한 것 등등. 아산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심장과 엔진을 만든 초석이 됐음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8년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아산의 소떼 방북은 ‘통일 퍼포먼스’로도 불린다. 정 회장의 소떼 방북은 금강산 관광 등 남북한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소떼 대신 마라톤이다. 한반도 통일 대역전 경주대회 또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에 없던’ 창조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북한 선수들도 초청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힘차게 통일의 발걸음을 내딛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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