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실에 화장실ㆍ세면대 갖춘 병원 1곳…최소한의 인권도 상실
입원 당일부터 ‘화학적ㆍ신체적 강박‘지시…환자들 인권침해 호소
정신병원의 폐쇄병동 입원 환자들이 병원 측의 자의적인 격리 및 강박 조치 등 심각한 인격유린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한 사립병원은 수분과다 섭취를 이유로 한 조현병 환자를 456시간 동안이나 격리했고, 화장실과 세면대가 갖춘 병원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정신병원 격리ㆍ강박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내 22개 정신병원의 평균 비자의(非自意) 입원환자 비율은 71.5%에 달했다. 6개월 이상 장기입원 환자도 39%나 됐다.
인권위는 “비자의 입원 비율과 6개월 이상 장기입원 비율이 비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특히 시장ㆍ군수에 의한 비자의 입원이 많은 공립병원의 경우 장기입원으로 연결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폐쇄병동에 갇힌 정신질환자들은 인간으로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의 현장조사 결과, 사립정신병원 격리실의 대부분은 대소변기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어 악취가 심했고 외부 환기창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일부 사립정신병원은 격리실을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초기 집중관리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격리실 위치가 간호사실 외부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공동거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창을 통해 격리실 환자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라면서 “용변은 물론 격리상태가 그대로 노출되는 등 환자 사생활권이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격리실에 화장실과 세면대가 함께 있는 곳은 1개 병원에 불과했다. 환자 안전조치도 미흡했다. 격리실에는 환자 안전을 위해 격리실 벽면에 충격완화쿠션이 반드시 부착돼야 하지만 조사대상 22개 병원 중 6개(국립 3, 사립3)에만 설치돼 있었다.
입원 첫날 격리실 행, 병원들 격리, 강박 멋대로
특히 적지않은 정신병원들이 환자 격리 및 강박 시 전횡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인권위 현장조사에 따르면 한 사립병원은 입원 중 수분을 과다 섭취한 한 조현병 환자를 456시간(19일) 동안이나 격리했다. 국립병원에 입원 중인 한 청소년 환자는 행동제한요법을 이유로 33회나 격리실에 갇혔다. 이는 격리와 강박에 대한 보건복지부 지침이 최대시간과 횟수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않은 탓이다.
환자 강박문제도 심각한 수위로 파악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알코올의존환자들은 보통 10시간 이상 강박 당하고 있었다. 정신병원들은 환자의 손상을 최소화 하는 것보다는 쉽게 구하고 단단하게 강박할 수 있는 도구를 선호하고 있으며, 일부 사립병원에서는 강박도구에서 심한 소변냄새가 나기도 했다고 인권위는 전했다. 일부 사립정신병원에서는 입원 당일 의사 지시서에 필요시마다 의사에게 전화 후 화학적 강박과 신체적 강박을 시행하라는 지시사항도 있었다.
비자의 입원 환자일수록 강박 강도가 셌다. 인권위 조사결과, 입원을 납득하지 못해 격한 감정과 행동을 보일 경우 입원 당일부터 격리됐다. 한 환자는 “정신병원 입원 뒤 안정실(격리실)을 화장실 가듯 했다. 약을 먹으면 어지럽고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어눌해지고 폭력적이 된다. 약을 먹으면 무척이나 졸린데, 수면제 성분을 넣은 듯했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인권위는 “중소 사립정신병원의 경우 알코올의존증 환자 비율이 46.3%로 높은 데다 입원 시 관행적으로 격리실을 거치도록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국립정신병원과 사립정신병원 입원 환자 4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0.2%가 격리와 강박으로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또 격리와 강박 중 기저귀 착용 등 존엄성이 침해 당했다는 응답이 20.6%, 욕설과 심리적 인격 훼손을 느꼈다는 대답도 16.3%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과도한 신체폭력(15.9%), 격리와 강박 중 부당한 음식제공 거부(9.1%), 성희롱 및 성폭행 경험(4.7%)도 적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인권위에 격리ㆍ강박에 따른 환자들의 진정 사례는 39건에 달한다. 사례에는 비자의 입원, 신체폭행 및 압박 등이 많았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을 가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격리ㆍ강박 중인 환자의 용변 시 보호사들이 용변 통을 들고 있거나, 기저귀를 채우거나, 그냥 환자복에 소변을 보게 하는 등 인격 침해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정신과 전문의의 지시가 없이 격리ㆍ강박하거나, 전문의 지시 없이 아무런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보호사가 환자에게 투약한 사례도 발견됐다”면서 “보호자 동의서가 없거나 입ㆍ퇴원 서류를 조작하고, 격리ㆍ강박 수행 시 진료기록이 없거나 부실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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