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3년 전 납품대금 지급 기한을 단축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의에서 끝내 폐기됐다.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의 반대 때문이다. 중기청이 반대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을 위해서였다.
22일 국회와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 끝에 폐기됐다. 이 안은 물품 제조나 공사 용역을 맡기는 위탁기업이 해당 용역을 제공하는 중소기업에게 물품을 받고 나서 납품대금을 30~45일 이내에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는 대금 결제 기한이 60일이다. 이 법이 발의된 것은 대금 결제 기한을 줄여 운영자금 부족으로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였다. 중소기업청 조사결과, 2011년 현재 결제기한을 지키지 않은 위탁기업은 6곳 중 1곳(15.8%)이었다. 석 달 이상 지체하는 경우도 4.9%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소기업청이 개정에 반대했다. 중소기업에 일감을 주는 위탁기업도 상당수가 중소기업이어서 법이 개정되면 한 편으로 수혜를 보면서 한 편으로 피해를 보는 이중 구조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결과 2010년 기준 수탁기업이 거래하는 업체 중 대기업은 16.6%, 중소기업 및 대기업 공동거래 24.7%인 반면 나머지 58.7%가 중소기업이었다. 최근 중기청이 자체 조사한 결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기한을 단축하면 일감을 주는 중소기업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김병근 중기청 중소기업정책국장은 “현장 의견 수렴결과 중소기업간 거래가 많았다”며 “현행 법률을 그냥 두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아 개정안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기한을 단축하면 현금 결제 대신 60일 기한인 어음결제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어음은 결제되기까지 통상 118일이 걸려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제도를 개선하면 피해가 수탁업체이면서 위탁업체인 중소기업에게 돌아와 바꾸지 못한다”며 “ 중소기업의 딜레마이자 비애”라고 말했다.
따라서 법률이 개정돼도 하도급법 등 다른 관련 법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경기가 회복돼 자금 순환이 좋아지거나 중소기업 대금지급 사정이 좀 나아질 때 제도 개선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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