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 본부 등 주최 단체들의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경찰이 2013년 12월 철도파업을 주도한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위해 강제 진입을 한 이후 1년11개월 만이다.
서울경찰청은 21일 오전 중구 정동의 민주노총 본부를 비롯해 민주노총 서울본부, 금속노조, 금속노조 서울지부, 건설산업노조, 건설노조, 플랜트노조, 공공운수노조 등 8개 단체의 사무실 12곳을 압수수색해 PC와 유인물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경찰은 서울경찰청과 남대문서ㆍ서부서ㆍ영등포서 소속 수사관 370명과 경찰관 기동대 4대 부대 320명 등 690명을 투입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집회 당시 장시간 도로를 점거한 채 사전에 준비한 쇠파이프와 철제 사다리 등으로 경찰관을 폭행하고 경찰 장비를 손괴하는 등의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또 지난 16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도피할 당시 이들 단체가 도피 과정을 도왔다고 보고 관련 증거물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압수수색 대상과 범위 등을 놓고 민주노총 측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영장 집행 과정에서 큰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본부의 경우 압수수색을 시작한 지 5시간40여분 만인 오후 1시10분쯤 마무리됐고, 경찰은 대형 박스 5개 분량을 압수했다.
경찰은 압수수색 직후 이례적으로 압수 물품을 즉각 공개하는 등 강력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압수 물품에서 이들 단체가 경찰관으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경찰 무전기와 진압 헬멧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손도끼와 해머, 밧줄 등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물품도 발견해 민주노총 측이 이 물건들을 보관ㆍ사용하게 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집회 당시 폭력행위를 하거나 한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189명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이날까지 7명을 구속하고 4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도를 넘어선 유례없는 압수수색’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낮 민주노총 본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살인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에게 한마디 사죄도 없던 경찰은 공안 탄압으로 비난을 모면하려 한다”며 “이는 적반하장을 넘어 패륜으로 강력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경찰은 민중총궐기 관련 사안뿐 아니라 세월호 1주기 추모제 및 4월24일 총파업 관련 자료까지 모두 압수수색하고 있다”며 “민주노총을 비롯해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노동ㆍ농민ㆍ시민사회단체 등으로 이뤄진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살인진압 경찰청장 파면 촉구,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촛불집회를 열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했다. 이들은 집회 직후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을 방문해 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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