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는 아산기념전시실이 있다. 아산(峨山) 정주영의 삶에 대한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그의 유품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낡은 구두 세 켤레와 수십 년 된 집무실 소파 한 세트다. 한때 한국 최고의 갑부였지만 근검절약을 실천했던 흔적이다. 특히 그의 첫 직장인 쌀가게 복흥상회에서 배달을 할 때 탔다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우뚝 설 수 있게 했던 고난과 도전의 상징물처럼 다가온다.
▦ 25일은 정주영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한국기업의 창업 1세대 중 도전정신을 최고조로 발휘한 거목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복흥상회에서 봉급을 모아 서울 신당동에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린 것이 도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자동차 수리공장을 설립한 것이 현대자동차의 모태가 됐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해외로 진출했다.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들이대 해외차관을 얻어와 현대중공업을 키웠다. 여기서 만든 배로 현대상선을 설립했고, 금강산유람선을 사들여 대북사업을 시작하는 등 그의 도전정신은 끝을 몰랐다.
▦ ‘해 보기나 했어?”로 대표되는 그의 어록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와 자세에 달려있다. 진취적인 정신, 이것이 기적의 열쇠다.” 지금처럼 한국 경제가 성장을 멈춘 채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 말은 방향타로 들린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그에 대해 “스스로 땅을 찾아 말뚝을 박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우리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을 하려면 이 같은 정주영식의 창의적 도전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 우리 사회에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거나 퇴조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미국 암웨이가 발표한 ‘2015 암웨이 글로벌 기업가정신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업가정신 지수는 44점으로 조사대상 44개국 중 28위에 머물렀다. 일본은 최하위였다. 선두권을 형성한 중국ㆍ인도ㆍ태국은 미래 전망이 밝아 보인다. 최근 유난히 기업가정신이 강조되는 것은 대내외 경제환경이 워낙 엄혹하기 때문이다. “시련이란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으면 찾고, 찾아도 없으면 닦아나가면 된다.” 정주영 어록의 또 다른 한 구절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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